아시아나항공과 HDC현대산업개발 간의 2500억원 계약금 분쟁에서 대법원 승소를 이끈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들은 "철저한 인수합병(M&A) 자문이 전부 승소의 열쇠"고 강조했다. 세종은 탄탄한 자문을 바탕으로 코로나19가 M&A 계약 철회 예외 사유임을 입증해 1심부터 3심까지 '완승'을 거뒀다.
강신섭 전 세종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3기)는 지난 24일 진행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나 같은 대형 소송은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막대하다"며 "소송의 명분과 사회적 가치를 명확하게 내세우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M&A의 본질과 분쟁의 이유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이 핵심이었고, 송무와 자문 변호사들이 합심해 소송 전략을 짰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무산된 기업 인수, 4년 소송전으로
아시아나와 HDC현산 간 분쟁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HDC현산은 2019년 12월 27일 아시아나·금호건설과 2조5000억원 규모의 M&A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만 25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듬해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자 HDC현산은 "아시아나의 재무 상태가 악화했다"며 대금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같은해 9월 계약이 무산됐다.
아시아나의 M&A 자문을 맡았던 세종은 법무법인 화우와 손잡고 HDC현산을 상대로 2020년 11월 질권 소멸 통지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M&A 무산 책임은 HDC현산 측에 있으니, 계약금은 아시아나에 귀속된다는 취지다. HDC현산은 "명시적으로 딜 클로징(거래 종결)을 거절한 적이 없으므로 계약 해제는 적법하지 않다"며 계약금을 반환하라는 반소로 맞받았다.
2022년 11월 1심, 2024년 3월 2심 모두 아시아나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3일 대법원이 마침내 상고를 기각하면서 4년 4개월에 걸친 소송전은 아시아나의 승리로 끝났다. 계약금 2500억원도 아시아나 측에 돌아갔다. 강 전 대표는 "심리불속행 기각(심리 없이 상고 기각) 기간인 4개월이 속절없이 지나가 애가 탔지만, 다행히 대법원이 빠르게 결론을 내려주었다"고 했다.
이원 세종 변호사(26기)는 "1심 승소 후 승기를 잡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15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인터뷰해 1심 증인 신문을 철저히 준비했다"며 "1심에서는 원고 측 3명, 피고 측 2명의 증인이 채택됐는데 2심에서는 증인이 추가되지 않아 재판부가 우리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희망을 품었다"고 말했다.
천재지변이 M&A 무를 수 있나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코로나19가 M&A 계약상 '중대한 부정적 영향(MAE)'에 해당하는지였다. HDC 현산이 코로나19를 문제삼아 계약에서 빠져나갈 수 있느냐다. MAE는 거래 종결 전 매도 대상 회사에 악재가 발생할 경우 계약을 무를 수 있는 조항이다. 경기 침체 및 천재지변처럼 개별 회사가 아닌 전체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예외로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종 변호사들은 2019년 여름 아시아나 M&A 초기 자문을 맡은 것이 승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창원 세종 변호사(19기)는 "팬데믹 이후 HDC현산은 딜 클로징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경영 정상화 전에는 클로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이런 흐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소송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수월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불가항력적인 사태로 인한 리스크 부담은 계약 당사자들이 합의할 영역이고, 실제 계약서에도 천재지변은 예외 사유로 뒀다"며 "회사가 빠르게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화물사업 비중을 늘려 단기간에 영업흑자로 돌아섰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사 사례가 많지 않아 영미법계 판례를 폭넓게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인용했다"고 덧붙였다.
"계약 단계부터 분쟁 불씨 없애야"
코로나19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관세 조치 등 예기치 못한 변수가 계속 등장하는 만큼 M&A 계약 단계부터 철저히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세종 변호사들은 분쟁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합의하고, 명시적으로 규정하라"고 당부했다. 사실관계가 아무리 복잡해도, 법정 분쟁은 결국 계약서 조문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유에서다.
박세길 세종 변호사(36기)는 "당시 M&A 계약서에는 '인수인들의 동의는 불합리하게 거부·지연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포함됐고, 법원도 이를 고려했다"고 했다. 특히 그는 "계약 해제 시 손해배상과 별도로 제재 성격의 위약벌을 명시해야 전액을 받아낼 수 있다"며 "이번 사건도 위약벌이 손해배상과 성질이 다르다는 점이 인정돼 계약금 전액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4년 넘게 이어진 이번 소송에서는 세종과 화우, 두 대형로펌의 협업도 승소의 밑거름이 됐다. 강 전 대표는 "쟁점 별로 역할을 분담하지 않고 순번을 정해 업무를 번갈아 처리했다"며 "서면 초안이 나오면 서로 가차 없이 코멘트를 주고받은 덕에 양질의 서면을 작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같은 소송에서는 로펌 간 상호 존중과 호양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