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美 공화당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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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라는 말은 언제나 무게를 가집니다. 특히 주인공이 사회적 소수자일 때 그 의미는 기록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최근 세상을 떠난 미아 러브 전 미국 공화당 의원(사진)이 그렇습니다. 그는 공화당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 하원의원이었습니다.

1975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러브는 아이티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성실, 신앙, 교육의 가치를 강조한 부모의 영향을 받아 기회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하트퍼드대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한 뒤 유타로 이주한 그는 그곳에서 모르몬교에 입교하고 지역사회 활동에 뛰어들게 됩니다.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은 2003년 새러토가스프링스 시의원에 당선되면서입니다. 이후 2009년 시장으로 선출된 러브는 도시 성장과 예산 균형을 이끈 실용적 리더십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내친김에 2012년 유타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0.31%포인트 차로 민주당의 6선 중진 짐 매터슨에게 아쉽게 패배합니다. 그러나 이 치열한 접전을 통해 그는 ‘공화당의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2014년 재출마한 러브는 78%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며 공화당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 하원의원이라는 역사를 씁니다. 백인 남성이 주류인 공화당, 그리고 2010년 기준 백인 인구 비율이 89.2%에 달한 유타주에서, 흑인 이민자 가정 출신의 여성 모르몬교도가 하원에 입성한 것은 미국 정치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의 당선은 미국 사회의 고정된 경계를 흔드는 하나의 충격이자 상징이었습니다.

러브는 작은 정부, 개인의 자유와 같은 보수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이민자 출신으로서 미국의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정당보다 ‘사람’을, 정파보다 ‘가치’를 앞세웠습니다. 그가 “미국은 원하는 사람 누구나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언급한 것은, 자신의 삶을 응축한 표현이었습니다.

2022년 뇌종양 진단을 받은 그는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기 전 조국과 국민에게 남긴 공개 편지에서 그는 “나는 이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미국 사회가 여전히 붙들어야 할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가치에 대한 조용한 증언이었습니다. 생전의 미아 러브는 그 가능성을 실천해 보인 정치인이었습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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