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년 10월 15일 조선군 두만강을 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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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의 상상화. 사진 출처 양천허씨대종회 이문영 역사작가 북정도원수 허종은 2만 대군에서 선발한 정예병 4000명을 이끌고 1491년(성종 22년) 음력 10월 15일 두만강을 건넜다. 강은 반쯤 얼어 도강이 쉽지 않았지만 부교 3량을 놓아 신속하게 진군했다. 2만여 명이 모두 건너지 않은 것은 군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발대 4000명은 보름 치 식량을 가지고 여진의 땅으로 진입했다. 조선이 대군을 동원한 이유는 여진족 가운데서도 사나운 우디케족의 준동 때문이었다. 1491년 1월에 우디케는 병력 1000여 명을 이끌고 함경도 경흥의 진지 조산보(造山堡)를 공격했다. 조선군 3명이 전사하고 26명이 부상했다. 조산보의 위기를 알게 된 경원부사가 군사를 이끌고 반격에 나섰으나, 두만강을 건너 적을 추격하다 전사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에 조선 조정은 북방 사정에 밝은 허종을 북정도원수로 임명했다. 허종은 문과 2등으로 관직에 나온 사람이지만 기골이 장대했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건주여진의 추장 이만주를 죽인 정해서정에도 참전했었다. 조선은 무턱대고 대군을 북방에 투입하지 않았다. 우디케와 사이가 나쁜 우량카이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길잡이로 삼았다. 이들이 우수한 군관들과 함께 적진을 살피도록 한 뒤 진군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을 잘 세운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첫 전투에서 우디케 4명이 달아나면서 조선군의 침입 사실이 알려졌다. 우디케는 반격을 준비했다. 우디케는 정예 기병 100여 명을 보내 기습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조선군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전의를 잃고 달아났다. 그들은 이런 대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우디케는 거주지를 버리고 모두 도망쳤다. 빈 마을에 도착한 조선군이 이들의 부락을 불살라 버렸다. 하지만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적진에 들어간 지 9일이나 되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군이 물러나자 우디케 기병 200여 명이 따라붙어 공격했다. 그러나 조선군을 당해 내지 못했고, 오히려 반격을 받아 쫓기는 처지가 됐다. 부상자들은 수풀 속으로 숨었고 나머지는 산으로 달아났다. 조선군은 11월 2일 두만강을 건너 북정을 마무리했다. 이 정벌을 ‘신해북정’이라고 부른다. 대군을 동원한 것치고는 전과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조선군은 전사자 없이 10여 명이 부상하는 데 그쳤지만, 적의 수급 역시 9개뿐이었다. 이를 두고 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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