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돈 주앙'이 더 깊고 성숙해진 캐릭터, 정열의 플라멩코로 19년 만에 한국 관객들과 다시 만날 채비를 마쳤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주앙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몰리에르의 희곡, 할리우드 영화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동침한 여자가 1003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호색한인 그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대상'이 됐다. 17세기 스페인의 소설 속 주인공에서 시작돼 무려 1000여개가 넘는 작품의 토대가 됐다.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공동 제작돼 2004년 캐나다에서 처음 공연된 뮤지컬 '돈 주앙'은 '노트르담 드 파리' 연출가 질 마으(Gilles Maheu)와 프로듀서 샤를 타라(Charles Talar), 니콜라스 타라(Nicolas Talar)가 의기투합했으며, 유명 싱어송라이터인 펠릭스 그레이(Felix Gray)의 작곡·각색으로 완성됐다. 캐나다 초연 이후 프랑스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 6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노트르담 드 파리'의 뒤를 이을 프렌치 뮤지컬의 새 걸작으로 꼽혔다.
한국 관객들과 만난 건 2006년이 처음이었다. 오리지널 팀 첫 내한이었던 당시 3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리고 원작 탄생 20주년을 맞은 올해 다시금 한국을 찾았다.
서울 중구 입정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펠릭스 그레이는 "한국 언론에 관객이 60만명을 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건 한참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100만명이 넘었다"며 웃었다.
그는 "20년 전 처음 '돈 주앙'을 만들었을 때는 다른 나라에서 공연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공연한다고 했을 때 할 말을 잃을 정도로 기쁘고 놀라웠다"고 했다. 이어 2006년 내한 당시를 떠올리며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일까'라는 생각에 2차로 놀랐다. 19년 전 기억이 생생해서 20년 전으로 돌아간, 젊어진 느낌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돈 주앙 역은 2021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에서 활약했던 지안 마르코 스키아레띠(Gian Marco Schiaretti)가 맡았다. 돈 주앙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유일한 여성인 마리아 역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십계' 등에 출연했던 레티시아 카레레(Laetitia Carrere)가, 돈 주앙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언자, 돈 카를로스 역은 '로미오와 줄리엣'·레미제라블 등으로 큰 사랑을 받은 올리비에 디온(Olivier Dion)이 연기한다.
2025년 버전은 이전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묻자 "19년 전 '돈 주앙' 캐스팅을 보면 다 20대다. 젊은 캐릭터로 그려졌었는데, 작품이 나이 들어가면서 인물도 나이를 먹고 연령대가 높아졌다. 더 깊은 감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안 마르코 스키아레띠가 늙었다는 건 아니다"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연출적으로는 LED 조명 등의 기술을 활용해 공연에서 감정이 더 풍부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조될 수 있도록 활용했다"면서 "댄스에서는 약간의 조정이 있었지만 큰 줄거리는 유지된다. 음악은 뮤지컬의 영혼이라고 생각해 거의 손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뮤지컬로 옮겨진 돈 주앙은 '스페인의 난봉꾼'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저주로 인해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면서 '진짜 나'의 모습을 깨닫고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돈 주앙의 삶과 사랑, 성장 이야기가 전부 담겼다.
기존의 돈 주앙과는 다른 캐릭터를 그려낸 이유에 대해서는 "이제껏 다뤄온 방식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돈 주앙이라는 인물이 가증스럽지 않나. 신도, 아버지도 무시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도 없고 모든 걸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인물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끝난 그가 진짜 사랑을 알게 되면 어떨까 싶었다.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낌으로써 고통받는 모습을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질투를 느끼게 된다. 진정한 정열을 그려보기로 한 거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결말도 다르고, 지금까지의 악에 대해 속죄하는 결말로 가게 됐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스페인 무용수들이 펼치는 화려한 플라멩코 퍼포먼스는 작품의 백미다. 안무가 카를로스 로드리게즈는 "심장 박동 소리, 외치는 소리가 플라멩코의 매력"이라면서 "플라멩코라고 하면 보통 스페인을 생각하는데 여러 문화권에서 합쳐져서 스페인에서 플라멩코가 완성됐다. 프랑스의 음악과 리듬을 안무에 녹여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렬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스텝을 더 강하게 밟는다든지 안무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고 했다.
펠릭스 그레이는 '돈 주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돈 주앙'은 아이 같다. 제 삶에서 자녀가 태어난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작품"이라면서 "내 모든 영혼과 심장, 열정을 갈아 넣었다.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도 모두 넣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작품이 캐나다에서 시작해 프랑스, 한국, 그리고 대만에서도 공연했다. 몇 달 뒤에는 불가리아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내가 자라온 프랑스 외 다른 곳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게 부모가 자식을 보듯 뿌듯한 마음이다. 난 한국에 오면 절대 무대를 보지 않고 관객을 본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신기하고 감격스럽다"고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사랑받은 작품이 된 비결과 관련해서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은 동서 가리지 않고 모든 문화권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주제다. 두 번째는 부자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 사랑의 다채로운 면을 다루고, 그걸 넘어 복수, 질투, 선과 악 등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또 플라멩코가 있고, 음악도 단순히 프랑스 음악이 아니라 교향곡을 넣어 누구나 감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돈 주앙'은 오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해 13일까지 단 2주간 공연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