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청년들이 꿈꾸는 한국[수잔 샤키야 한국 블로그]

4 hours ago 4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수잔 샤키야 네팔 출신·‘지극히 사적인 네팔’ 저자

수잔 샤키야 네팔 출신·‘지극히 사적인 네팔’ 저자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에게 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영화 한 편을 추천하라면 나는 자주 ‘국제시장’(2014년)을 떠올린다. 이 영화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의 한국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거대한 통계가 아닌 한 가족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낯선 땅으로 떠난 젊은이들의 땀은 개인의 희생을 넘어 가난했던 나라가 다시 일어서는 데 소중한 외화가 됐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네팔의 젊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수도 카트만두의 좁은 골목에서 한국어 단어장을 들고 다니는 청년들, 한국 드라마 속 대사를 따라 하며 웃는 학생들, 고용허가제(EPS) 시험 날짜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보내는 사람들이다. 반세기 전 한국 청년들이 독일로 향했다면, 오늘날 네팔 청년들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작업복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K팝을 들으며 키운 호감, 드라마를 보며 상상한 도시, 그리고 “내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조용하지만 절박한 희망도 함께 들어 있다.

이 변화의 첫 문을 연 건 K컬처였다. 한국 드라마는 한국의 식탁과 골목, 가족의 말투와 연인의 표정을 보여줬고, K팝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멀리서도 반짝이게 했다. 네팔 청년들은 자막을 따라 읽다가 한국어를 배우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마음을 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호감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인생의 계획이 된다. 한국어 시험을 준비하고, 고용허가제 정보를 찾아보며 가족과 상의한 끝에 청춘의 몇 년을 한국에 걸어 본다.

물론 네팔 청년들이 한국을 선택하는 이유를 문화적 동경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네팔로 송금되는 돈은 한 가정의 생활비이자 자녀의 학비이고, 부모의 병원비이자 때로는 집을 짓는 벽돌이 된다. 세계은행은 최근 네팔 경제보고서에서 해외송금 증가가 경제 성장과 경상수지 개선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2026회계연도 상반기 네팔의 해외송금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6.6%에 이르렀다. 해외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월급이 국경을 건너 한 가족의 내일이 되고, 한 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이 모습은 한국인에게 낯설지 않다. 한국도 같은 길을 걸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가족을 위해 고국을 떠났지만, 그들의 노동과 송금은 한국 산업화의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됐다. 시대와 국적은 다르지만, 가족의 삶을 바꾸기 위해 국경을 넘는 선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래서 나는 네팔 청년들의 한국행을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의 이동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그것은 가난을 견디는 청춘의 방식이자, 가족을 사랑하는 한 사회의 오랜 문법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부족한 인력을 메우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네팔 청년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조금 다르다. 드라마 속 세련된 도시를 갖고 있고, 정해진 절차를 통과하고 노력하면 자신과 가족의 삶을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나라다. K컬처가 빚어낸 한국의 이미지는 단순한 문화상품을 넘어 공정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약속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외국인 노동자가 얼마나 필요한가’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선택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돌아가는가’를 살펴야 한다. 소프트파워는 드라마와 음악, 무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K컬처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들이 실제로 마주하는 공장과 농장, 숙소와 병원, 이웃과 행정기관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완성한다. 영화 ‘국제시장’이 오늘날에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산업화의 성공을 보여줘서만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낯선 땅으로 떠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시선으로 오늘의 한국을 바라보면 공장과 조선소, 농촌에서 일하는 네팔 청년들은 더 이상 낯선 외국인에 머물지 않는다. 반세기 전 독일의 탄광과 병원에서 일했던 한국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K컬처는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꿈꾸게 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들이 한국에서 살아본 뒤 내려진다. 떠나는 순간 “다시 찾고 싶은 나라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은 어떤 홍보영상보다 강한 한국의 증언자가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국격은 세계인이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한국을 믿고 찾아온 사람들을 한국인들이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수잔 샤키야 네팔 출신·‘지극히 사적인 네팔’ 저자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