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적 쌓기’에 교통카드 난립
이번 사태는 3년 전 정부와 수도권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무제한 교통카드를 출시할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2023년 8, 9월 국토부와 서울시는 비슷한 시기에 새 교통카드 도입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대중교통을 일정 횟수 이상 타면 이용액 일부를 돌려주는 ‘K-패스’를, 서울시는 월 6만5000원에 지하철과 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를 내놨다. 당시 정치권에선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도권 경쟁’을 벌인다는 해석이 나왔다.
같은 당 소속 장관과 지자체장조차 의견을 모으지 못하면서, 수도권 교통카드 정책은 각자도생으로 흘렀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The 경기패스’를 선보였고,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 i-패스’를 출시했다. 둘 다 국토부 교통카드를 기반으로 자체 할인을 얹은 방식이었다.시간이 흐르며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고양·과천·구리·김포·남양주·성남·하남시는 “서울 출퇴근하기 불편하다”는 주민 불만에 기후동행카드에 동참했다. 한편 국토부는 정권 교체 후 K-패스를 모두의 카드로 개편하며 비율과 정액 중 유리한 쪽으로 환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결국 수도권에는 거주지, 교통수단, 승차 횟수 등에 따라 혜택이 제각각인 교통카드가 난립하면서 주민들은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지조차 알기 힘들게 됐다.
이런 상황이 과연 정상일까. 국토부와 서울시가 무제한 교통카드를 출시할 때 참고했던 독일의 ‘9유로 티켓’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2022년 한시적으로 선보인 이 티켓은 ‘한 장으로 독일 전역을 편리하고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에 충실했다. 한국 돈 1만5000원만 내면 한 달간 독일 전역의 지하철, 버스, 트램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고물가와 복잡한 대중교통 요금 체계에 지쳤던 국민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자 이듬해 ‘도이칠란트 티켓’으로 상설화됐다. 현재 한 달에 63유로(약 10만7000원)로 가격은 올랐지만 교통카드별 혜택과 이용 조건을 일일이 따져야 하는 한국보다는 훨씬 편리하다. 처음부터 주민 불편과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댔다면 ‘한국판 9유로 티켓’이 이렇게 산으로 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관과 지자체장들은 무제한 교통카드를 자신의 ‘치적’으로 여기며 협력하기보다 경쟁했고, 명칭과 서비스를 변경하며 갈수록 누더기로 만들어버렸다.현안마다 부딪치는 국토부-서울시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가 종료되는 만큼 일단 모두의 카드로 갈아타라고 안내하는 중이다. 그런데 나중에 기후동행카드 플러스가 출시되면 이용자들은 또 카드를 바꿔야 할 수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최근만 해도 ‘감사의 정원’ 조성, 용산정비창 개발, 재개발 규제 완화 등을 둘러싸고 번번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교통카드 하나 조율하지 못하는 두 기관이 주택·교통·도시개발 같은 난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 갈 수 있을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하기만 하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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