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 자락에는 ‘솟대’를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전시 및 체험 공간인 ‘능강솟대문화공간’이 있다.
2005년 4월에 문을 연 이곳은 관장을 맡고 있는 조각가 윤영호 씨(80)와 그의 둘째 아들인 현대미술 작가이자 태승 씨(51·능강솟대문화공간 조형연구실장)의 손때가 짙게 묻은 곳이다. 윤 관장이 솟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5년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미술관장이던 그는 권옥연 화백의 ‘산마을’이라는 작품에서 솟대를 발견하고 ‘희망의 메시지’에 흠뻑 빠졌다. 이후 솟대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뒤지고 민속학자와 역사학자들을 찾아다녔다.
솟대는 기러기나 오리 등 새를 높은 장대 위에 형상화한 조형물을 말한다.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돼 삼한시대에는 소도(蘇塗·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지)에 솟대를 세워 인간의 소망을 하늘에 기원했다. 2004년 세계박물관협회 총회에서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공식 상징물로 선정됐다.윤 관장은 1988년 경기 판교 광교산 자락에 친구의 오두막집을 빌려 솟대를 깎기 시작했고, 5년 뒤 첫 솟대조각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다. 그의 솟대는 자연 그대로를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조각이지만 가지를 자르고, 홈을 파고, 주변 환경과 어울리게 세우는 것이 전부다. “하늘에 인간의 희망을 전달하는 매개체에 인공의 냄새가 강하면 안 된다”는 게 그 이유다. 윤 관장은 “인위적이고 정형화되어 정(靜)적인 모습의 기존 솟대와 달리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동(動)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9년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로 작업 공간을 옮겼다가 2005년 현재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당시 홍익대 회화과를 나와 전업작가로 활동하던 태승 씨가 솟대공간 조성 제안서를 제천시에 제출하는 등 힘을 보탰다. 2007년에 이곳을 찾았던 도올 김용옥은 ‘차세하유 경선경 소도개벽 신천지’(此世何有 更仙境 蘇塗開闢 新天地·세상 어디에 이런 선경이 있겠는가. 솟대를 세운 신성한 성지가 처음 열리니 이곳이야말로 신천지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한 해 수만 명이 찾는 솟대의 성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이 두 사람에게 ‘천군만마’가 나타났다. 바로 윤 관장의 큰아들 태석 씨(52)가 3월부터 능강솟대문화공간에 합류한 것이다. IT관련 대기업에서 20여 년간 해외 마케팅과 영업업무를 한 태석 씨는 지금은 솟대공간 ‘기획실장’ 직함을 달고 솟대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세계화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태석 씨는 “솟대는 단순한 전통 조형물이 아닌 한국인의 소망과 공동체 정신이 담긴 문화자산”이라며 “솟대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세계화를 위해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던 태석 씨의 아내도 남편의 결정에 흔쾌히 동의하고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이 모두 제천으로 이사를 왔다.형제는 아버지의 전통적인 형태의 솟대 문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히고 있다.
태승 씨는 청동기 시대 솟대 장신구에서 영감을 얻은 ‘브론즈 솟대’와 야생화인 도라지꽃 매발톱꽃, 붓꽃 등의 색깔을 옮긴 ‘파스텔컬러 솟대’ 등 젊은 감각의 솟대를 만들고 있다. 그는 “한국의 미를 바탕으로 한 철학자 구도자로서의 작가의 길을 추구하는데, 이런 생각을 솟대에 담고 있다”고 말했다. 태석 씨는 “회화 전공자인 동생은 아버지의 솟대에 조형적 다양성과 색감을 더해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고 있다”라며 “이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국내외 전시, 체험 교육, 콘텐츠 기획 등 전 세대가 솟대를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부자는 올해 능강솟대문화공간 개관 20주년을 맞아 10월경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윤 관장은 “솟대 관련 도록을 제작하고, 솟대 기획전, 브론즈 솟대 작품 관공서 기증, 솟대 키트 제작, 솟대 버스킹 등 여러 프로그램을 아들들과 운영해 볼 생각”이라며 “솟대가 인간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하늘을 향한 ‘희망의 매개체’인 만큼 솟대에 대한 우리 삼부자의 열정이 하늘에 닿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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