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15일 한국을 불침 항모처럼 묘사했다.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또는 고정된(fixed) 항공모함과 같다”고 했다. 중국 코앞에 있는 평택, 군산의 미군기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 핵심 당국자가 한국을 이렇게 불렀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드문 발언인데, 대중 억제를 위한 전략적 가치를 인정한 발언이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은 미국에 있어서 (소련에 함께 저항하는) 불침 항모”라고 스스로를 낮춰 부른 적은 있다.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성격을 재정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봐야 한다. 내용도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올 3월 비공개 회람한 ‘국방전략 잠정 지침’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지침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한다. 하지만 북의 재래식 군사 위협은 미군이 아닌 한국과 일본이 함께 막도록 하겠다고 돼 있다. 미국은 중국 견제 후 남은 힘으로 한국을 돕는다는 구상이다. 주한미군은 1953년 동맹 이후 유지해 온 북한 억제가 아닌 중국 대응으로 성격이 달라진다.
▷트럼프라도 동맹을 쉽게 버릴 순 없다. 미국의 최강대국 지위는 나토 같은 집단안보나, 한미, 미일 등 양자동맹을 잘 맺어 이룬 것이다. 주한미군을 돈의 가치로 따지려 드는 트럼프지만 필요성은 명확히 알고 있다. 그는 집권 1기 때 “왜 비싼 돈 들여 주한미군을 운용하느냐”며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온 답이 “북한이 워싱턴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을 때 알래스카 미군은 15분 뒤에 파악하지만, 주한미군은 7초 만에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그 이후론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6·3 대선 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은 통상 및 관세 못지않게 70년 넘게 주둔한 주한미군의 혜택을 돈으로 보상해 달라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한반도라는 위치가 지닌 가치를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이란 항모에서 전투기를 대만으로 출격시키겠다며 미중 갈등에 우리를 끌어들일 개연성을 높였다는 점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안보 운명을 가를 동맹 간 험난한 대화와 협상의 때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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