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로는 못 버틴다"…'AI 3강' 달성할 해법 찾았다 [최영총의 총명한 테크날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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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1.20 10:49 수정2026.01.20 10:49

자연계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 힉스 입자를 찾아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에어버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성과를 낸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다. 단일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인프라·인재를 여러 나라가 분담하고, 표준과 거버넌스 체계까지 함께 설계하며 ‘프런티어 기술’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 인류의 생산성과 안보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인공지능(AI)은 사실상 미국과 중국만의 전쟁터로 굳어지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기술개발을 이어가고 있지만, 투자 규모·컴퓨팅 자원·생태계 지배력의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면서 ‘산발적 노력’만으로는 격차가 구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에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박경렬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등 전 세계 29명의 석학은 한목소리로 ‘AI 브릿지 파워’ 간 협력을 통해 미·중 양강 구도에서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중의 놀이터 된 AI…오픈소스도 비싸다

캐나다 AI 연구기관 밀라(Mila), 옥스퍼드대 등 세계적 연구진이 지난달 공동 발간한 ‘AI 개발에 관한 다국적 협력의 청사진’ 보고서가 던진 문제의식은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다. AI 경쟁력이 컴퓨트·데이터·인재·모델 소유권이 한 덩어리로 뭉치면서, 미·중과 그 외 국가들 사이가 ‘차이’가 아니라 ‘단절’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다.

지난해 10월 기준 글로벌 AI 컴퓨팅 역량(엔비디아 H100 환산)을 비교한 표에 따르면 미국은 약 107만 장, 중국은 약 23만 장 수준의 연산 자원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보고서 캡쳐

지난해 10월 기준 글로벌 AI 컴퓨팅 역량(엔비디아 H100 환산)을 비교한 표에 따르면 미국은 약 107만 장, 중국은 약 23만 장 수준의 연산 자원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보고서 캡쳐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AI 컴퓨팅 역량은 미국에 약 75%, 중국에 15%, EU에 5% 수준으로 집중돼 있다. 투자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2025년 미국 기업의 AI 인프라 지출이 3000억달러 이상, 중국은 1000억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이 구조 속에서 세계가 마주한 선택지는 두 갈래로 굳어지고 있다. 하나는 미국 또는 중국의 AI 모델을 채택해 핵심 기능을 외부에 맡기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 노출 위험까지 떠안는 ‘종속’이다. 다른 하나는 종속을 우려해 도입을 늦추다가 산업 생산성, 사이버 안보 등 핵심 지표에서 뒤처지는 ‘열세’다. 실제 중국은 일대일로의 ‘디지털 실크로드’와 연동해 비서방권에 자국 AI 모델을 공격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보고서에 따르면 딥시크의 국가별 점유율은 벨라루스 56%, 쿠바 49%로 나타났으며, 에티오피아·짐바브웨·우간다·니제르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11~14%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서명한 'AI 액션 플랜' 행정명령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AFP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서명한 'AI 액션 플랜' 행정명령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AFP

그간 한국을 포함한 많은 신흥국의 전략이었던 ‘패스트 팔로잉(빠른 추격)’도 AI판에서는 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초기에 더 싸 보이지만 비용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프런티어 국가는 AI 발전의 경제적 이익을 크게 가져가 추가 개발 재원을 마련하지만, 추격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나아가 선도 AI가 최고 전문가의 R&D 역량을 보강·모사·초월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 패스트팔로잉 전략 자체가 무의미 해진다.

"혼자로는 못 버틴다…컴퓨팅 자원·데이터 공동화"

29명의 석학은 ‘AI 브릿지 파워’ 간 기술적·거버넌스적 연대를 주문했다. 이는 단순히 ‘미·중을 따라잡기 위한 동맹’이라기보다, 미·중 양극 구도 속에서 선택지를 넓히려는 전략에 가깝다. 다만 보고서는 브릿지 파워 국가를 특정하진 않았다. 박 교수는 유럽과 한국, 영국, 캐나다 등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가장 크게 기대해볼 수 있는 효과는 ‘비용 절감’이다. AI 사용(추론) 비용은 각국 인구와 수요에 따라 분산되지만, AI 학습과 개발 비용은 한 나라의 사용자 수와 무관하게 막대한 고정비로 발생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여러 브릿지 파워국이 모델 학습에 필요한 높고 고정적인 비용을 나눠 부담하면, 단일 국가가 독자적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의 역량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러 조사 기관에 따르면 첨단 AI 인프라 및 학습 비용은 모델 당 지난해 약 30억달러 수준에서 2028년 206억달러까지 급증한다.

유럽 내 설치될 AI 팩토리 지도. EU는 지난해 약 40조원을 들여 AI 기가 팩토리를 최대 5개 짓겠다고 발표했다./EU

유럽 내 설치될 AI 팩토리 지도. EU는 지난해 약 40조원을 들여 AI 기가 팩토리를 최대 5개 짓겠다고 발표했다./EU

유럽은 이미 공공 컴퓨팅을 축으로 협력에 나서며 인재·자원·비용 절감 등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4월 EU는 ‘유럽 AI 대륙 행동계획’을 발표하며 300조원 규모의 민간·공공 자본 동원 계획을 내놨고, 여기에 AI 기가팩토리 구상 등이 포함됐다. 각 시설에 약 10만 개의 최첨단 AI 칩을 탑재하는 ‘기가팩토리’와 독일의 ‘주피터’, 프랑스의 ‘알리스 레코크’ 같은 공공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역량을 단계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연구진은 여기에 다른 브릿지 파워들이 가진 자원까지 결합되면 선택지가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딥시크와 미스트랄은 아키텍처 혁신과 전략적 집중을 통해 다른 최첨단 모델 대비 적은 비용으로 성과를 냈다”며 “미·중 수준의 지출을 하지 않고도 프런티어에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조사기관 카슨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GW) 비중은 미국 44%, 중국 16%였고, 유럽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는 31%로 집계됐다. 데이터까지 공동으로 확보하고, 각자 가진 컴퓨트·인재·데이터 자산을 다국적 파트너십으로 조정·결합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혁신 일로를 걷는 미·중이 챙기지 못하는 윤리·신뢰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지정학적 함의를 강하게 띠는 ‘미들파워’ 대신 ‘브릿지 파워’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 자체가 이를 반영한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미·중이 압도적인 건 맞으나 AI 모델 만으로 기술이 진화하지 않는다”며 “신뢰성이 전제돼야만 하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나라 간 ‘연결’이라는 의미를 담아 용어를 썼다”고 말했다.

합의는 깨지고, 경쟁은 가속...협력은 가능한가?

문제는 ‘AI 국제 협력’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파리에서 열린 AI 액션 서밋 정상선언문에 미국과 영국이 서명을 거부하며 AI 규제와 혁신을 바라보는 시각차의 한계가 드러났다. UN은 회원국 간 입장 차이와 예산 부족으로 포괄적 협력의 장을 유지하기 어렵고, G7 역시 AI 거버넌스 합의보다 경제적 혜택을 강조하는 선언으로 갈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AI는 민간 기업의 기술·자본·데이터가 결정적 변수인 영역이라, 국가 간 합의만으로 시장을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라는 한계도 동시에 존재한다.

특히 유럽식 규제를 둘러싼 시각차는 ‘협력의 실행력’과 직결되는 변수로 지목된다. 유럽 내부에서도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거나 기업에 과도한 규범 준수 비용을 떠넘긴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고서가 빠른 의사결정과 자원 배치가 가능한 거버넌스를 주문한 것도 이런 현실을 의식한 대목으로 읽힌다.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 내 CMS 검출기 내부 모습./CERN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 내 CMS 검출기 내부 모습./CERN

그럼에도 CERN, 에어버스, ITER 같은 다자 프로젝트는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거대 기술은 한 국가의 단독 질주가 아니라, 위험과 비용을 관리할 수 있는 협력 구조를 함께 만들며 발전해 왔다는 측면에서다. 박 교수는 애치슨-릴리엔탈(Acheson–Lilienthal Report) 보고서를 예로 들었다. 2차 세계대전 후 핵무기의 강력한 통제와 평화적 활용 가능성을 오펜하이머 등이 제시한 보고서로, 당장 완성된 해법을 내지 못했더라도 이후 거대 과학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제도적·지적 자산으로 축적됐다는 흐름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지금 제안이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 후속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며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도 연대 속에서 리더쉽을 발휘해야 3대 강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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