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가 ‘대격변 시대’인데, 사실 이것도 과소한 표현입니다. 혼란 그 자체입니다. 한국은 제조강국으로서 강점 등 가진 카드를 미국과 잘 거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30일 ‘2025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세계 근본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이 ‘전략’인지 ‘광기’인지 구별되지 않는 시점에 도달한 이상 한국은 유연한 태도로 각종 충격에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강력해진 트럼프, 혼란에 빠진 세계 질서
이날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놓고 토론이 이뤄졌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이자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제모을루 교수는 “과거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더 많은 힘을 얻었다”며 “하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로드맵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안정자산, 유동성의 원천, 세계 경찰 역할 등 미국이 패권국가일 수 있었던 요인에 균열이 발생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넘어 세계가 당면한 문제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균열로 아제모을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을 꼽았다. 그는 “미국의 관세 정책은 세계 흐름을 재편하고자 하는 전략의 일부”라며 “동시에 행정권을 미국 대통령이라는 한 사람 손에 더 편중시키고자 하는 시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글로벌 질서 균열이 ‘달러 리더십’에도 생채기를 냈다고 아제모을루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도 국제 사회가 미국 자산을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자산으로 인식할지는 물음표”라며 “이번에 입은 손상이 영구적으로 남으면 향후 세계 자본 흐름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국가 연대도, 관세 협상도 ‘유연함’ 필요
이 같은 대격변의 시대에 한국이 갖춰야 할 무기는 무엇일까. 아제모을루 교수는 ‘유연성’을 재차 강조했다. 거래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유연성을 발휘해 세계 질서 개편 움직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유연성은 관세 협상에서도, 국가간 연대에서도 발휘될 수 있다고 아제모을루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우방국으로서 동맹 관계를 강화해야겠지만, 지금의 트럼프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며 “한국은 적과 우방이 섞인 상황에서 동맹을 맺어야 하는 현실에 익숙한 만큼 미국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 제3의 축을 형성하는 것도 고려할만 하다”고 말했다.
내부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경쟁을 촉진해 더 많은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벗어나 케이팝처럼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며 “헬스케어, 교육, 도소매, 부동산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 “美·中 제로섬은 옳지 않아”
아제모을루 교수는 미·중 갈등과 관련해 “두 나라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냈다. 중국은 미국 정부와의 관세 협상을 사실상 거부하며 응하지 않고 있다. 그는 “세계 금융 안전성과 인공지능(AI) 등 여러 문제에서 양국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중 관계가 적대적이 된다면 세계에도 부정적일 것”이라며 “미국이 어느 정도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완전한 제로섬 게임 자체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남정민/맹진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