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럽패싱’에 안보자강 이어
북미 편중 교역구조 다변화 시동
中과 전기차 관세 완화 논의 시작
아랍에미리트와는 FTA 체결 모색
개별 회원국들도 양자협정 잰걸음
스페인, 베트남과 교역 확대 추진
유럽연합(EU)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석 달만에 안보에 이어 교역 부문에서도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탈미화(De-Americanization)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논의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패싱’ 기조에 놀라 안보 자강에 나선 것처럼 최근 트럼프 관세전쟁을 계기로 무역 다변화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보도를 통해 EU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나서는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조명했다.
블룸버그는 “EU 내부에서 협상 결과와 무관하게 미국과의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EU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EU가 대안 시장을 모색하고 나서면서 남미, 중동, 중국 등에서 그 동안 정체됐던 무역협정 협상이 개시되는 등 무역장벽을 낮추기 위한 협력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앞서 EU는 지난 10일 중국 전기차에 대한 고율관세 폐기 협상을 재개하기로 중국 측과 합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첨단 기술과 산업 역량을 견제하는 미국과 보조를 맞춰 이른바 ‘디리스킹(위험 제거)’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작년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5.3%의 고율관세를 부과한 상황이다. 이에 중국은 고율관세에 찬성한 프랑스의 대표 수출품인 코냑을 집중 겨냥해 EU산 브랜디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폭격으로 ‘동병상련’ 처지가 된 EU와 중국이 잠시 서로를 향해 겨눈 무기를 내려놓는 데탕트(긴장 완화)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마로슈 셰프초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10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통화하며 지난해 EU가 부과한 관세 대신 중국산 전기차에 최소가격을 설정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EU는 아랍에미리트(UAE)와도 무역 협상을 시작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0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의 요청을 수락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CEPA)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세계 10대 산유국 중 하나인 UAE는 EU와의 무역 협정을 오랫동안 추진해 왔으나, EU는 UAE가 속한 걸프협력회의(GCC) 전체와 협정을 맺기를 희망해왔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EU 상품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크게 위축될 위기에 처하자, 빠르게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EU 내 개별 국가들도 교역 파트너를 늘리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EU가 작년 12월 협상을 마무리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대해왔으나 최근 지지 입장으로 선회했다.
볼프강 하트만스도르퍼 오스트리아 경제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한지 사흘 만인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메르코수르 협정을 완전히 새로운 맥락에서 평가해야 한다. 지금 이 협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중 EU-메르코수르 FTA 관련 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프랑스, 폴란드 등 일부 회원국이 자국 농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제 이행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하는 흐름이다.
또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 9일 베트남을 찾아 “스페인은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 자유무역, 경제 개방을 지지하며, 무역 전쟁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고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고 믿는다”며 “동남아시아와의 무역 확대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베트남 고속철도 인프라 사업에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EU 재무장관들은 전 세계의 기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새 협정을 체결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새 무역협정을 통해 미국 관세에 따른 타격을 상쇄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EU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EPC)의 정책 분석가인 바르그 포크만은 “미국 경제는 크고 부유하며 새로운 무역 협정 관련해서도 회원국별로 저항이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프랑스는 메르코수르와의 FTA에서 농업 부문 개방에 신중한 입장”이라며 “긴급한 상황임에도 새로운 협정을 시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