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 내가, 나쁜 건 바이든 탓'…트럼프의 아전인수 경제인식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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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아전인수 경제인식[이상은의 워싱턴나우]

“(미국 경제의) 좋은 부분은 트럼프 경제고, 나쁜 부분은 바이든 경제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 취임 100일을 맞아 NBC방송의 ‘미트 더 프레스’ 코너에 출연해 내놓은 답변이다.

대담을 맡은 크리스틴 웰커 기자는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증시가 오를 때는 ‘트럼프 효과’라고 하다가, 지난 1분기 경제가 역성장(-0.3%) 한 것에 대해서는 바이든 탓을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제부터 트럼프 경제가 되는 거냐”고 몰아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현재 경제는 부분적으로 트럼프 경제다.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좋은 것만 자기 것이라고 답했다. 인터뷰가 시작된 지 불과 5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인터뷰가 “벌써부터 부정직한 인터뷰”라고 불평했다.

간단하고 직설적인 이 답변을 듣고 10여년 전 기업 구조조정 취재하던 시절 생각이 났다. STX조선이 크게 어려워졌던 시절, 중국 다롄에 투자해 놓은 법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가 있었다. 외환위기 때 한국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라고 알려졌던 분이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다. 그는 굉장한 비법인 것처럼 해당 법인을 나누면 된다고 했다. “좋은 부분(현지자산)과 나쁜 부분(부채)을 각각 가진 두 회사로 쪼개서 좋은 쪽만 살리면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기업분할은 기업의 생존을 이어가고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선 곧바로 질문이 떠올랐다. 나쁜 부분은 누가 갖는다는 말인가? 그는 금융사나 상거래 채권자들이 손해를 보겠다는 문서에 서명해야만 이런 계획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치 않는 듯이 보였다. 기업의 자산을 구성하는 부채 항목에는 수많은 책임이 들어 있다. 그 책임의 무게가 기업을 가라앉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도 마찬가지다. 좋은 경제는 트럼프 경제, 나쁜 경제는 바이든 경제라는 논리는 유아적이기도 하지만, 그가 미국이라는 거대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의 방향타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지난 1분기 미국 경제가 역성장으로 표현된 것은 수입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이다. 관세를 우려한 기업들이 사재기를 해서다. 어떻게 포장해도 바이든 탓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편리한 답변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기고 있다는 인상만 주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분열이 커질수록 정파적 사고가 전략적 사고를 압도한다. 장기적으로 대학 연구비 삭감이 국가에 좋을 리 없으나 상대 세력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도 있다. 짧은 임기 사이에 정적과 그 무리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거듭 이어지면서 법원은 전쟁터가 됐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분열이 심할수록, 장기적인 비전과 이를 실행하려는 의지는 홀대받는다. 상대를 향한 손가락질 그 자체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한국 상황과 다를 것도 없다. 우리도 나쁜 건 죄다 전 정부 때문이라면서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한 대통령들을 여럿 보지 않았나. 차기 대통령은 남 탓 뒤에 숨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어려운 주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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