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손질과 헛걸음이 필요한 이유[서광원의 자연과 삶]〈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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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시행착오는 하지 않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나이 지긋한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이전 칼럼을 읽었다면서 말이다. 다른 참석자들 역시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난데없는 질문이 툭 던져지고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가 더해지면 마치 급습을 받은 것처럼 곤란할 때가 많다. 반대 의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기 위해 집중도가 확 높아진다. 다행히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의 데이비드 허츠펠드 교수 연구팀이 특수안경을 쓴 참가자들에게 앞에 있는 물잔을 한 번에 잡아보라고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수안경이 앞에 있는 물잔을 실제 위치보다 10cm 정도 오른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허공에 헛손질하기 바빴다.

하지만 무의미한 헛손질이 아니었다. 몇 번 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 위치가 다를 뿐만 아니라 얼마나 다른지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한 안경을 쓰고도 잔을 잡을 수 있었다. 뇌가 운동신경을 재조정하는 덕분이다.

이 연구로 알게 된 건 우리 뇌가 성공하는 방법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실패했는지에 대한 과정도 기억해서 행동을 다시 설정한다는 것이다. 이 안경을 벗고 다시 잔을 잡으려 할 때 헛손질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뇌가 이전 위치에 적응한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쓸데없는 헛손질이 아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신경 재조정 과정을 훨씬 쉽게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전과는 반대인 왼쪽으로 10cm 이동하는 안경을 썼을 때 훨씬 빨리 적응한다.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헛손질이 필요 없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헛손질을 해야 진정 하고자 하는 걸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과정이 학습과 성장을 훨씬 더 활발하게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성공했을 때보다 하고자 하는 일이 안 됐을 때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고, 뇌 역시 유연해지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실패하면 안 되겠지만, 적당한 헛손질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시행착오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일사천리가 아닌 시행착오는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추격자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방향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무조건 그 방향으로 빨리 달리는 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할 때는 ‘헛손질’이 필요한 앞의 실험처럼 헛걸음이 필요하다. 이쪽도 가보고 저쪽도 가보면서 어느 쪽이 내가 갈 길인지 탐색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는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다. 가보지 않은 길을 어떻게 알 수 있고, 해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잘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종(種)이 세상에 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세포 분열과 복제 단계에서 이전과 다른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탄생의 관점에서 보면 시행착오는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이 때문에 암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진화 역시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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