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민 신임 배반”…5대 탄핵사유 모두 “중대한 위헌-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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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2025.4.4.사진공동취재단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2025.4.4.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는 4일 8명의 재판관 모두의 일치된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12·3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주관적·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이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헌법과 현행법을 중대하게 위반해 국민 신임을 배반했다는 취지다.

헌재 재판관 8명은 △계엄 선포 △국회 군경투입 △포고령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 탄핵소추 사유 5개를 만장일치로 전부 인정하면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한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헌재는 계엄 전후 상황 기록, 법정 증언 등을 통해 확정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① 실체적·절차적 정당성 없는 계엄 선포

헌재는 우선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선포한 계엄 자체가 실체적·절차적·법적 정당성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계엄 선포 당시는 헌법 77조 1항과 계엄법 2조 2항이 계엄 선포 요건으로 규정하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에 해당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이유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대로)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피청구인의 법률안 재의요구 등 평상시 권력 행사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법상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권이 있지만, 객관적인 위기상황이 아닐 때 주관적으로 사용한 만큼 위법하다는 취지다. 법조계 관계자는 “계엄 선포의 토대부터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국무회의 심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 직전 국무총리 등 9명의 국무위원에게 계엄 선포의 취지를 간략히 설명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다른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계엄 선포에 대한 심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② 위헌·위법한 국회 군경 투입

헌재는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대 쟁점으로 여겨진 ‘국회 군경 투입’ 역시 국회의 계엄 해제권을 규정한 헌법 77조 5항 등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군경을 투입하여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이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함으로써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했다”며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을 위반하였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적 목적으로 (국회에)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해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다”며 “이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③ 기본권 침해한 포고령 발령헌재는 계엄 선포 직후 발령된 포고령도 국회의 권한은 물론 국민의 기본권까지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회, 정당, 지방의회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령부의 통제를 받도록하는 내용 등이 담긴 만큼 헌법 8조가 보장하는 정당 활동의 자유를 비롯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모두 침해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포고령은) 기본권의 행사를 허용하면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판단 하에 일반 국민의 비판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조치”라면서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한 것” 이라고 지적했다.

④ 영장주의 위반한 중앙선관위 압수수색

윤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군 병력을 투입해 중앙선관위를 압수수색한 것도 헌재는 중대한 위법행위로 판단했다. 헌법 77조 3항과 계엄법 9조 1항은 비상계엄 상황이라도 법원의 영장 없이 하는 압수수색은 ‘군사상 필요한 때’ ‘미리 공고하고’ 하도록 매우 예외적으로 규정하는데, 군사상 필요도 인정되지 않고, 사전 공고도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선관위에 대하여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도록 하여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이자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관위 압수수색이 ‘계엄사령관이 관장하는 행정사무의 집행’ 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해서도 “헌법은 선거관리사무를 일반행정사무와 기능적으로 분리하여 규정하고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⑤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는 “사법권 독립 침해”

계엄 당시 ‘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가 이뤄진 것 역시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한 헌법 101조, 103조 등을 위반한 것이란 판단이 내려졌다. 특히 헌재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메모 등에 포함된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등의 이른바 ‘체포 명단’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개입됐다는 점을 ‘인정사실’로 적시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이 사건 명단의 사람들에 대하여 체포까지 할 것을 지시하였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하더라도 필요시 체포할 목적으로 행해진 위 사람들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가 피청구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⑥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

헌재는 5개 소추 사유를 이렇게 인정하면서 헌법과 법률 위반의 중대성 역시 인정된다고 봤다. 헌재 판례에 따르면 대통령 등 공직자를 파면하려면 위헌·위법행위가 중대해야 한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또 다른 파면 요건인 ‘국민 신임 배반’에 대해서도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며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밝혔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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