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내린 지 1주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은 퇴거하면서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를 향해 손인사를 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사저 정치’를 하느냐가 조기 대선의 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지자들은 “탄핵 무효” 집회
윤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후 5시 한남동 관저에서 퇴거했다. 2022년 11월 7일 서초동 사저에서 관저로 이사한 지 886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관저에서 키우던 반려견, 반려묘 11마리도 함께 이동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은 관저를 찾아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배웅했다. 윤 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취지의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은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일부 지지자와는 포옹했다. “윤석열”을 외치는 군중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약 10분 동안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량에 탑승한 이후에도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변호인단을 통해 배포한 입장문에서 “이제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꿈꿨던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 국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지난겨울 많은 국민, 그리고 청년들께서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관저 앞을 지켜주신 열의를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했다.
사저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경호를 전담할 경호팀 인원은 40여 명으로 구성됐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르면 파면된 전직 대통령도 경호와 경비에 관련된 예우는 유지된다. 다만 경호 기간은 임기를 채운 전직 대통령(최장 15년)과 달리 10년이 최대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사저가 고층 건물이라 경호가 어려운 데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 수도권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저 정치, 대선 변수 된다”
정치권에선 윤 전 대통령이 사저로 간 뒤에도 메시지를 내며 사저 정치를 이어가느냐가 정국의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9일 역사강사 전한길 씨를 만나 “나야 감옥 가고 죽어도 상관없지만 우리 국민들 어떡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4일과 5일에는 당 중진인 나경원 의원과 지도부를 잇따라 만나 조기 대선에 우려를 나타냈다. 사저 정치 여부에 따라 국민의힘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 전 대통령이 경선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후보는 ‘윤심’(윤 전 대통령 마음)을 앞세우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윤 전 대통령과 만난 사실을 공개하고 “대통령이 되면 사람을 쓸 때 충성심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 뜻으로 출마한 건 아니다”면서도 “(윤 전 대통령이) 고생 많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도 확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조기 대선의 원인 제공자가 윤 전 대통령”이라며 ”윤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선거 내내 부각돼 선거 구도가 ‘윤석열 대 이재명 시즌2’로 간다면 국민의힘은 필패”라고 했다.
양길성/박주연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