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슬두의 팀 컬러를 다시 구축하겠다.”
2022년 10월 18일 취임식 당시 만났던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의 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새드 엔딩’이었다.
두산은 “이승엽 감독이 2일 자진 사퇴했다”며 “이승엽 감독은 이날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은 이를 수용했다”고 같은 날 알렸다. 두산 감독이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자진 사퇴한 것은 2011년 6월 김경문(현 한화 이글스 감독) 감독 이후 이 전 감독이 처음이다.
이승엽 전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거포로 명성을 떨쳤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KBO 통산 1096경기에서 타율 0.302 467홈런 1498타점을 올렸다. 최우수선수(MVP) 및 홈런왕을 각각 5차례, 골든글러브를 10차례 수상했으며, 2003년 작성한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56홈런)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일본프로야구(NPB)에서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 간 활약하며 재팬시리즈 우승을 2차례 경험했다.
2022시즌을 9위로 마친 뒤 두산은 이런 이승엽 전 감독에게 지휘봉을 안기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분명 스타플레이어였지만, 코치 경력 없이 바로 감독이 됐기에 많은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승엽 전 감독의 지도자 생활은 야구예능 ‘최강야구’ 감독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이 전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취임식 당시 “기본기와 디테일, 팬이 중요하다”며 “허슬두의 팀 컬러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이후 이승엽 전 감독이 이끈 두산은 2023시즌 정규리그에서 74승 2무 68패를 기록,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NC 다이노스에게 9-14로 완패하며 한 경기 만에 가을야구를 마쳐야 했다. 과거 영광의 시절을 함께했던 두산 팬들은 이 성적에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2024시즌에도 쉽지 않은 시간들이 이 전 감독을 기다렸다. 74승 2무 68패를 작성,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따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위즈에 1~2차전을 모두 내주며 준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KBO가 2015년부터 도입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위 팀이 준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한 것은 2024년 두산이 처음이었다. 당시 두산의 탈락이 확정되자 팬들은 좀처럼 잠실야구장을 떠나지 못했고, ‘이승엽 나가’를 외치며 분노했다.
이에 이승엽 전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절치부심 했지만, 선수들의 줄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각각 선발과 불펜의 핵심 자원들이었던 곽빈, 홍건희가 부상을 당했으며, 외국인 선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일 기준 성적은 23승 3무 32패로 9위. 8위 NC와는 3경기 차다. 여기에 5월 30일~1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고척 3연전에서는 루징시리즈에 그치기도 했다. 10위 키움이 3연전 위닝시리즈를 챙긴 것은 35일 만이었다.
결국 이 전 감독은 자진 사퇴를 택했다. 그렇게 파격적이었던 두산의 선택도 결과적으로 다소 아쉽게 끝나게 됐다. 두산은 당분간 조성환 감독 대행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두산 관계자는 “세 시즌간 팀을 이끌어주신 이승엽 감독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이승엽 감독은 올 시즌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구단은 숙고 끝에 이를 수용했다”고 이야기했다.
[이한주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