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와도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진 못할 것입니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재지정한 뒤 서울시 공무원들은 이 같은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놨다. 불과 한 달 새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지정이 반복되며 시장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시장 변동성을 줄여야 하는 서울시와 정부가 이를 키웠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앞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토허제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뜨거운 이슈인 토지거래허가제는 일본에서 시작된 규제책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고도 경제 성장 과정에 따른 토지 투기가 발생하자 그 대책으로 선매제도와 양도소득세 중과 외에 토지거래규제를 법제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74년 12월 ‘국토이용계획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서는 토지의 투기적 거래와 땅값 급등을 막고 적정하고 합리적인 토지 이용을 위해 토지거래규제를 정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일본은 허가제와 신고제 체제를 갖췄다. 전국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사후신고제와 함께 땅값 상승 정도 등에 따라 구역과 기간을 한정해 적용되는 규제구역제도·감시구역제도·주시구역제도가 대표적이다. 특히 토지의 투기적 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땅값이 급등한 곳은 규제구역으로 지정한다. 이 구역에서는 토지 거래가 적정한 가격인 동시에 투기성이 없고, 적정한 이용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만 허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허가제가 시행된 적은 없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 원장은 “일본은 일찍 법률적 토대를 갖췄지만 신고제만 시행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허가제를 시행한 적이 없다”며 “한국에서는 신고제가 사문화하고 시장 경제에 역행하는 허가제만 시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땅 투기 차단…위헌법률심판도 제기
한국은 일본보다 늦은 1978년 처음 토지거래허가제도를 도입했다. 1970년대부터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수도권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투기 수요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행된 곳은 서울이 아니라 대전이었다. 1985년 충남 대덕연구단지 개발 지역 29㎢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19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며 전 국토의 93.8%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금융실명제로 금융권에서 나온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해제와 지정은 반복됐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4월, 정부는 침체한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국의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모두 풀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다시 전체 개발제한구역 5397㎢를 허가구역으로 정했다.
해당 기간 헌법재판소에 두 번의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989년과 1997년 모두 토지거래허가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토지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재산권에 비해 광범위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에서다. 투기적 토지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 토지의 처분을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의 본질적 침해라 보기 어렵고, 과잉 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규모 개발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2010년대 들어서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의 면적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0년 전체 국토 면적의 5.58%(5600㎢) 수준이던 토지거래허가구역은 2018년 3월 0.39%(396㎢)까지 줄었다.
아파트거래허가제로 변질…‘성역화’ 지적도
이 제도에 대해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20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토지거래허가제를 규제 카드로 꺼내 들면서다. 정부는 서울 강남구 국제교류복합지구와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 내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제도 시행의 주 대상이 토지가 아니라 아파트 등 주택이 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서울시는 “주변 지역의 매수심리를 자극하고 투기 수요가 유입될 우려가 높다는 판단에 따라 선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3년 지정 대상을 줄이면서 아파트만 규제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토지거래허가제도는 사실상 아파트거래허가제도로 활용됐다. ‘땅 투기’를 막으려던 본래 제도의 도입 취지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부작용도 커졌다. 일반적으로 토지거래허가제는 가격보다 거래량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해제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 참여자들은 ‘토지거래허가제 해제=가격 상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격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전면적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풀기 어려워졌다고 우려한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송파구 위례동 등 주변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차츰 해제하겠지만 서초구 반포동, 송파구 잠실동 등 핵심 아파트 지역은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당분간 금리 인하와 공급 부족 등으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쉽게 풀리지 않고 연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돼 부동산 시장을 움직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봤다. 윤 위원은 “시장의 자율성은 훼손된 채 실거주할 사람과 현금이 있는 사람만 진입할 수 있는 폐쇄적인 구조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단지의 급등세는 꺾이겠지만 가격이 하락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주춤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 토지거래허가제
투기가 성행하거나 지가가 급등하는 지역,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지역에 지정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부동산 거래가 가능하다. 주거용은 2년간 실거주 의무가 부여된다.
강영연/한명현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