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및 부동산 경기 침체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택지지구에서 반납된 땅이 최근 새 주인을 찾고 있다. 3~4년 전 부동산 급등기 때 예상가의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에 매수한 민간업체에서 계약을 해지한 주택 용지가 대상이다. 정상값에 새로운 민간업체를 찾으면서 주택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일부 민간업체가 저렴한 토지를 선제적으로 매입하는 등 공급난을 호재로 개발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새 주인 찾는 수도권 주택용지
18일 업계에 따르면 LH가 재공급에 나선 경기 파주운정3 주상복합용지 2개 필지는 최근 2720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 토지는 2021년 예정가액 2500억원에 공급된 곳이다. 당시 한 대형 개발업체가 토지를 4550억원에 낙찰받으며 계약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계약 직후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으로 지난해 계약이 해제됐다.
새 주인이 사실상 최초 공급 가격과 비슷한 수준에서 해당 부지를 매입해 향후 주상복합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LH는 재공급 공고 당시 사전청약 당첨자 546명을 대상으로 우선 공급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급 가뭄과 금리 인하 기대 속에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 토지도 민간업체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 공동주택용지는 지난달 말 선착순 수의계약을 한 뒤 최근 매각에 성공했다. 2개 블록(6만5000㎡)에 주상복합 1296가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이 토지도 지난해 낙찰받은 건설사가 사업을 포기하면서 다시 시장에 나왔던 물건이다.
인천 검단지구에서도 최근 4만1439㎡ 규모 택지가 매각돼 주택 공급에 청신호가 켜졌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발이 더뎠던 경기 화성 병점복합타운 업무시설 부지도 최근 낙찰자가 정해졌다.
◇‘적정 땅값’이 사업 추진 동력
정부와 LH는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공공택지지구 내 용지 분양을 서둘렀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민간 참여가 저조했다. LH 등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택지 중 유찰된 곳은 25개 필지에 달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1조7682억원이다. 과거에 낙찰받은 토지를 반납하겠다는 건설사까지 늘어나면서 분쟁이 잇따르는 일이 벌어졌다. LH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현장에서 토지 매각에 겪는 어려움이 컸다”며 “경기가 안 좋아 건설사와 계약 해제를 두고 소송을 벌이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미분양 증가와 신규 자금 조달 차질로 토지 입찰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비교적 저렴한 토지는 매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신규 사업을 언제까지 안 할 수는 없다”며 “최근 반환 용지 등 비교적 저렴한 택지가 나오는 만큼 적극 검토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수도권에서 자금 사정이 나은 일부 건설사와 시행사에 국한됐다는 의견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LH가 각종 혜택을 붙여 토지를 매각하지만, 지방에선 미분양 적체 등으로 어느 건설사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