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파병의 역사[임용한의 전쟁사]〈433〉

1 day ago 3

1353년 중국 장쑤성의 소금 장수였던 장사성이 원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장사성은 전성기에 쑤저우를 함락하고 오왕(吳王)을 칭할 정도로 강대했지만, 원나라뿐 아니라 백련교도를 끼고 반란을 일으킨 주원장과도 대립하다가 멸망했다. 그는 실패했지만 장사성의 반란은 원나라 말기에 발생한 대표적인 한족의 반란으로, 주원장이 원을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우는 계기가 됐다. 장사성의 난이 발발하자 원나라는 고려에 지원을 요청했다. 공민왕은 2000명의 정예 병력을 파견했다. 병력은 적었지만, 고려군은 대단히 잘 싸웠다. 이 전쟁에서 스타가 된 장수가 최영인데, 최영뿐 아니라 인당, 원호, 황상, 안우, 이방실 등 고려가 보유한 유능한 장수란 장수는 모조리 파병했다. 왜 우리가 원의 전쟁에 참전해야 하느냐, 강압에 의한 치욕스러운 파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반란군의 잔당이 요동을 거쳐 고려까지 침공했다. 고려는 수도 개경이 함락당하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이 홍건적의 난 진압에 파병 장수들이 맹활약을 했다. 또 파병으로 원의 실체를 알게 된 공민왕이 반원 정책을 감행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아픈 사건도 있다. 원의 강압으로 진행된 일본 정벌은 비극으로 끝났다. 명과 청의 맞대결이었던 사르후 전투에 파병된 조선군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 파병을 두고 명의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란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진짜 문제는 명청 대립기 국제 정세에 대한 오판이었다. 효종 당시 나선 정벌은 패전하진 않았고, 홍건적의 침공처럼 이어지는 지정학적 사건도 없어 역사에서는 존재감이 흐릿하다. 그러나 조선군 포수의 능력을 발휘한 전쟁이었다. 국제 정치는 정글이다. 국제적인 사건을 자주냐 굴종이냐라는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힘과 권위는 현명하게 행동하는 자에게 따라온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