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은 론 지역 와인[정기범의 본 아페티]

2 weeks ago 10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프랑스 와인 소비량이 급감하고 있다지만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식사와 함께 와인을 즐긴다. 코스 요리를 즐기며 음식과의 마리아주(mariage·궁합)를 위해 샴페인, 화이트, 레드, 식후주를 번갈아 마시는 광경도 일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라면 프랑스 남부 론 지방의 와인을 꼽는다. 갈비찜, 불고기 등 양념이 강한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론 와인은 그 안에서도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 북부 론 와인에는 △코테 호티 △콩드리외 △생 조제프 △크로제 에르미타주 등이 있고, 남부 론 와인으로는 △샤토뇌프 뒤 파프 △지공다스가 대표적이다.

남부가 론 지방 와인 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북부 론 와인이 희소성이 있고 비싼 이유다. 토양과 기후도 차이를 만든다. 북부에서는 계단식으로 포도 재배를 한다. 론강을 따라 화강암과 점토질로 이뤄진 급경사지에 포도밭이 늘어서 있다. 반면 남부에선 석회질과 점토, 자갈, 사암을 기반으로 한 완만한 경사에서 포도가 자란다. 또 차고 건조한 지방풍인 미스트랄이 부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론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90%는 레드 와인이다. 개인적으로는 레드의 경우 쉬라 품종을, 화이트의 경우 비오니에 단일 품종으로 만드는 북부 론 와인을 사랑한다. 그중에서도 ‘코테 호티’는 90%의 시라 품종과 10%의 비오니에 품종을 블렌딩한 레드 와인이다. 탄탄한 구조감과 섬세한 피니시함, 블랙베리의 스파이시한 맛과 향이 특징이다. 시라, 루산, 마르산 품종을 블렌딩해 만드는 에르미타주 역시 묵직한 풀보디의 레드 와인으로 훌륭하다.

북부 론의 화이트 와인으로는 콩드리외를 선호한다. 이 와인은 ‘시냇가 모퉁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부 론강 유역에서 재배되는 비오니에 단일 품종으로 만든다. 제비꽃내음과 경쾌한 살구향이 어우러져 우아한 인상을 준다.

남부 론 와인에도 스타가 있다. ‘교황의 와인’으로 불리는 ‘샤토뇌프 뒤 파프’가 그 주인공이다. 이 와인은 14세기 68년 동안 7명의 교황이 바티칸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부 도시 아비뇽을 교황청 삼아 머물렀던 ‘아비뇽 유수’ 사건과 연관이 있다. 당시 교황이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데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병에는 교황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시라, 그르나슈, 무베르드를 비롯해 13개 품종을 블렌딩해 만드는 풀보디의 샤토뇌프 뒤 파프는 블랙체리와 스파이시함이 돋보이는 묵직한 레드 와인이다.

론 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생산자로는 이 기갈, 샤프티에, 폴 자블레 에네 등이 있다. 가족 경영을 하는 에르미타주의 장 루이 샤브, 코테 호티의 유명 생산자인 도멘 자메, 샤토뇌프 뒤 파프를 대표하는 샤토 드 보카스텔, 도멘 뒤 뷔외 텔레그라프 등도 있다. 프랑스 남부 칸에서 파리까지 가는 A6 고속도로 변의 맛집과 와인들이 소개되는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을 인상깊게 봤다. 영화에서는 화이트 와인으로 콩드리외, 레드 와인으로는 샤토뇌프 뒤 파프, 코테 호티 등 론 지역 와인이 언급됐다. 샴페인과 부르고뉴 와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보르도 와인은 요즘 프랑스인들에게 시들하다. 그러나 론 지역 와인은 프랑스 여행 중 즐기기에 좋은 가격과 품질로 감동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