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한미그룹 경영권을 두고 창업주 일가와 신동국 회장의 진검승부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지분 구도에서는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창업주 가족 측이 다소 앞서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이사회와 주요 경영 사안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는 데 필요한 의결권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했다. 신 회장 추가 지분 매입이 현실화하면 양측 경쟁은 다시 격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4자 연합 속 물밑 경쟁… 추가 지분 확보 나선 신동국현재 송 회장과 임 부회장, 라데팡스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 킬링턴유한회사, 신 회장은 이른바 ‘4자 연합’으로 묶여 있다.
다만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주주총회에서 공개적인 표 대결이 벌어지기보다 이사회 구성과 주요 인사, 투자·배당 정책 등을 둘러싼 치열한 물밑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 회장은 공식적인 그룹 경영진은 아니지만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로서 그룹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추가 지분 매입을 통해 지배력을 더 높이면 경영진 구성과 자본 배분, 주요 사업 투자에 미치는 영향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상당한 자산가로 알려진 신 회장이 보유 자산을 처분해 현금을 마련하는 대신 대규모 차입을 통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기존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출을 통해 5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한 것은 일반적인 장기 투자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금융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배지분을 확대한 만큼 결국 경영권 확보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활용한 투자금 회수가 뒤따라야 하는 구조”라는 분석이다.신동국 회장 지분 확보 위해 5365억 조달… 이자만 월 15억 추산신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지분 확대를 위해 주식담보대출과 교환사채(EB)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약 5365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주식담보대출 규모만 4400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 4% 안팎 금리를 단순 적용하면 신 회장이 부담할 연간 이자 비용은 약 180억 원, 매월 약 15억 원에 달한다는 평가다. 신 회장 지분 확대는 단순한 개인 투자를 넘어 한미그룹 지배구조 성격을 바꾸는 변수다.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하면서 지분을 확보한 이상 향후 배당 확대와 보유 자산 활용,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한 지분 매각 등 투자금 회수 방안을 모색할 유인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재 4자 연합 주주 간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으로 거론되는 2029년까지 상당한 금융비용이 누적될 수 있다. 신 회장이 투자 원금과 금융비용은 물론 향후 자녀 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세금까지 고려해 의미 있는 수익을 확보하려면 1조 원대 이상의 지분 거래가 필요할 수 있다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신 회장 최종 목표가 독자적인 경영권 확보인지, 일정 수준까지 지분을 확대한 뒤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처분하는 것인지도 쟁점이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 지분 확대를 기획하고 자문하는 일부 세력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전제로 한 지배지분 엑시트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주변의 재무적 회수 논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다만 현재까지 신 회장이 제3자에게 지분을 매각하거나 한미그룹에서 엑시트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대규모 차입과 자금 회수… ‘홈플러스 사태’가 남긴 경고 주목
신 회장의 차입금 자체는 한미약품이나 한미사이언스의 재무제표상 부채로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대주주가 매년 수백억 원에 이르는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는 그룹 배당과 투자, 자본 배분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신 회장이 최대주주 지위를 바탕으로 경영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수록 개인의 재무적 이해관계가 회사의 중장기 전략에 반영될 가능성도 커진다.
특히 제약산업은 하나의 신약이 성과를 내기까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배당과 현금 확보 요구가 강해지면 연구개발 투자와 설비 증설, 기술 도입 등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의사결정과 충돌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금융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에 배당 확대를 요구할 유인도 커질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자산 활용과 비용 절감, 사업 구조조정 등이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부상할 경우 한미약품의 연구개발 경쟁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대규모 차입을 동원한 경영권 확보와 투자금 회수 중심의 경영이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하며 지배지분을 확보한 주주는 배당 확대와 자산 활용, 경영권 프리미엄을 통한 지분 매각 등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신 회장 역시 수천억 원의 차입을 통해 지분을 늘리고 있어 향후 개인의 자금 회수 필요가 한미그룹의 배당과 투자, 자본 배분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특히 신 회장이 공식적인 경영 직책 없이 최대주주 지위를 바탕으로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회사의 장기 성장 전략보다 개인의 재무적 이해관계가 앞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홈플러스 사태가 남긴 핵심 논란도 차입 자체보다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투입된 막대한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현금흐름과 자산이 활용됐다는 데 있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약 5조 원의 차입금을 활용했다. 이후 홈플러스는 연간 2000억 원이 넘는 이자 비용을 부담했고 점포와 물류센터 등을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하는 세일 앤 리스백 방식으로 4조 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했다. 홈플러스는 이 과정에서 대규모 배당을 실시했고 매장 폐점과 인력 감축도 이어졌다. 자산 매각과 배당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동안 회사의 임차료 부담과 재무적 부담은 커졌고, 영업 경쟁력은 약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홈플러스가 유동성 악화 끝에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과도한 차입에 의존한 경영권 거래와 투자금 회수 방식의 문제점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경영권 확보를 위해 막대한 외부 자금을 투입하면 이후 기업가치를 장기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금융비용을 충당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일이 우선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 회장의 지분 확대 역시 차입 규모가 커질수록 한미그룹의 기업가치 제고보다 자금 회수 논리가 앞서는 구조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업주 가족 불안한 우위… 남은 지분 확보 관건
창업주 가족 측 역시 현재의 우위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측은 상속세를 완납한 데다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와 라데팡스파트너스가 합류하면서 우호 지분을 확대했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자금력을 갖춘 백기사로 평가받으며 창업주 가족 측의 지배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장남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신 회장에게 전량 매각한 것은 창업주 가족 측에 뼈아픈 대목이다. 환매조건부 거래 대상으로 묶여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 지분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 지분 구조와 창업주 가족이라는 경영 명분에서는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측이 다소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시장에 출회된 대규모 지분 매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신 회장이 추가 차입을 통해 지분 확보에 나설 경우 양측 모두 상당한 자금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창업주 가족 측이 지분과 경영 명분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어 신 회장 측으로서는 조급할 수밖에 없다”며 “신 회장이 무리하게 자금을 유동화하며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러한 행보가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약품 창업주가 신뢰했던 고향 후배가 가족과 반대편에 서게 됐다는 점은 신 회장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라며 “창업주 가족과 신 회장 사이의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하면서 경영권 경쟁 역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은 창업주 가족 간 갈등을 넘어 개인 최대주주와 외부 우호 자본, 금융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힌 자금력 싸움으로 변하고 있다. 신 회장이 대규모 차입을 통해 확보한 지분을 실제 경영권 장악에 활용할지, 경영권 프리미엄을 통한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활용할지가 향후 한미그룹의 지배구조와 기업가치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황소영 기자 fang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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