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기업가치 기준 글로벌 1위 제약사인 미국 일라이릴리에 장 질환 치료제 기술을 수출했다. 계약 후 바로 수령하는 선급금만 1000억원이 넘는 ‘대형 딜’이다. 지난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뒤 첫 성과를 내면서 비만약 등 추가 기술이전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 단위’ 기술수출
한미약품은 릴리에 신약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1일 밝혔다.
임상 개발과 승인, 상업화 등 단계별 조건(마일스톤)에 도달하면 한미약품은 최대 11억8500만달러(1조7844억원)를 받게 된다. 계약 후 바로 받는 선급금 등은 7500만달러다. 신약 개발이 마무리된 뒤 판매가 시작되면 일정 비율의 로열티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한미약품은 이 물질을 단장증후군 치료제로 개발해왔다. 영양분을 흡수해야 할 소장이 짧아진 상태로 태어나거나 소장 기능이 망가져 영양 결핍 등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단장증후군 환자 대상 글로벌 임상 2상은 한미약품이 마무리하고, 릴리는 추가 임상시험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 시장의 상업화 권한만 한미약품이 계속 보유한다.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릴리가 소네페글루타이드의 개발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점이 매우 뜻깊다”며 “혁신 신약개발을 통해 ‘인간존중과 가치창조’라는 사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자가면역질환 임상 확대할 듯
소네페글루타이드는 한 달에 한 번 주사하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2 계열 신약이다. 한미약품의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술인 ‘랩스커버리’를 적용했다.
비만약 개발에 활발히 쓰이는 GLP-1과 비슷한 GLP-2는 장 내벽 성장을 돕는 호르몬이다. 단장증후군 환자에게 투여하면 장 점막이 튼튼해지도록 도와 음식 속 영양분과 수분 흡수 능력을 높여준다.
일본 다케다제약의 매일 맞는 GLP-2 주사제 ‘가텍스’가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 약의 2024년 연 매출은 9억6600만달러로, 2023년(7억8800만달러) 대비 22.6% 상승했다. 월 1회 투여 주사제가 개발되면 환자 편의가 높아져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
릴리가 치료 대상 질환군을 추가할 가능성도 크다. 소네페글루타이드는 염증 억제 효과가 높다. 한미약품은 염증성 장질환 등 자가면역 질환 동물 모델에서 이미 효과를 확인했다.
이번 계약으로 2015년 개발된 랩스커버리 플랫폼 기술이 재평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 후 10년가량 지나면서 ‘랩스커버리는 올드한 기술’이란 평가가 있었다”며 “릴리와의 딜이 저평가 이슈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미약품은 올해 말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첫 국산 GLP-1 비만약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출시한다.
바이오주 훈풍 부나
한미약품은 지난해 4월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후 기술수출 등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조직을 개편했다. 이번 계약은 첫 성과다.
그간 시장의 관심은 한미약품의 근감소 개선 비만약 ‘HM17321’에 집중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한 비만약이 아닌 장 질환 치료 신약에서 ‘깜짝 성과’를 내자 추가 기술수출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이날 한미약품 주가는 전장보다 9.78% 상승한 53만9000원에 마감했다.
‘조 단위’ 기술 수출 소식이 전해지자 침체됐던 국내 제약·바이오 주식 시장에 반등 모멘텀이 형성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GLP-2에 대한 추가 글로벌 딜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선 덴마크 바이오기업 질랜드파마가 가장 많은 GLP-2 후보물질 보유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 중엔 프로젠이 GLP-1과 GLP-2에 동시 작용하는 당뇨·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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