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비관세장벽 회의 연기된 이유가…쿠팡 때문일까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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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2.21 17:31 수정2025.12.21 17:31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AFP연합뉴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AFP연합뉴스

한미 양국의 고위급 무역회담이 지난 18일 예정돼 있었으나 연기됐다. 연기 이유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내년으로 미루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미국 측에서는 한국 정부가 디지털 규제를 추진하는 것에 미국 정부가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한국 측 협상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 통상교섭본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8일(현지시간 기준) 워싱턴DC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비공개 회담을 열 계획이었으나 최근 이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공동위원회는 2012년 한미 FTA 체결후 만들어진 기구다. FTA의 핵심인 무관세 약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 이후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비관세 장벽을 논의하는 틀로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이번 공동위원회는 한미 관세협상 이후 처음 개최될 예정이었다.

회담 연기와 관련해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7일 오후 트럼프 정부가 차별적이라고 간주하는 디지털 관련 법안을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것을 문제삼아 회담이 ‘취소’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한 취재원은 “미국 행정부는 한국이 디지털 분야를 비롯한 우선과제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디지털 분야가 현재 양국 비관세 장벽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인 것은 맞다. 한미 양국은 지난 공동 팩트시트에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한다”고 했다. 이 문구에 대해 미국 측은 ‘온라인 플랫폼법을 도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은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쿠팡의 사무실. 사무공간보다는 교류용 공간이 훨씬 넓게 구성된 것이 특징적이다. 한쪽 벽에는 쿠팡이 미국 회사로서 미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는 내용과 파트너 기업들의 로고가 진열되어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미국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쿠팡의 사무실. 사무공간보다는 교류용 공간이 훨씬 넓게 구성된 것이 특징적이다. 한쪽 벽에는 쿠팡이 미국 회사로서 미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는 내용과 파트너 기업들의 로고가 진열되어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이런 가운데 난데없이 쿠팡이 끼어들었다. 17일 저녁 폴리티코 기사에는 쿠팡에 대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지만, 해당 기사와 함께 ‘쿠팡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회담 연기 배경 중 하나’라는 주장을 담은 글이 한국 주요 언론에 전파됐다.

이어 폴리티코는 18일자 기사에서 “미국 관료들이 규제 과잉이라고 평가하는 쿠팡의 국회 청문회 후에 회담이 취소됐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웨버샌드윅은 두 기사를 공유하면서 “한국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불거진 쿠팡 등 미국 상장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압박과 데이터 관련 조사를 ‘규제 과잉’이자 부당한 대우로 간주”한 것이 이번 회의 취소의 주요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무역법 301조 조사 착수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강력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USTR이 쿠팡의 데이터 유출 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나섰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측 협상 관계자들은 해당 청문회와 무관하게 회담이 연기되었고, 연기 결정 시점도 더 빨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USTR 대변인실은 한국경제신문의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한국 측 협상 관계자들은 이런 기사 내용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최근 쿠팡 정보유출 건과 디지털 규제 이슈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것이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공동위는 통상 1년에 한 차례 열리는 장관급 회의고, 단순 논의가 아니라 이행계획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실무협의를 모두 마친 후 결과를 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날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연내 개최는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고, 쿠팡 문제 핵심은 온라인플랫폼법이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이기 때문에 관계없다”고 해명했다.

현재 쿠팡은 워싱턴 의회의사당 앞 핵심 지역에 대규모 사무실을 얻어 정부와 의회 뿐만 아니라 대 언론 접촉까지 강화하는 중이다. 미 상원이 공개하는 로비 자료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387만달러(약 57억원)를 로비에 사용했고, 올해도 3분기까지 251만달러(37억원)를 썼다.

홍보나 로비가 나쁜 일은 아니다. 기업이 자신의 활동을 알리고 때로는 방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마치 쿠팡이 양국 협상과정을 지렛대 삼아 비판에서 빠져나가려는 듯이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USTR이 쿠팡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다면 개별 기업의 민원이 국가 간 협상을 흔드는 셈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쿠팡을 지원하는 측에서 아전인수 식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 양국 간의 신뢰를 낮추는 형국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정말 한미 양국 간 갈등으로 번질 만한 사안인지부터 따져볼 일이다.

미국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쿠팡의 사무실. 사무공간보다는 교류용 공간이 훨씬 넓게 구성된 것이 특징적이다. 한쪽 벽에는 쿠팡이 미국 회사로서 미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는 내용과 파트너 기업들의 로고가 진열되어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미국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쿠팡의 사무실. 사무공간보다는 교류용 공간이 훨씬 넓게 구성된 것이 특징적이다. 한쪽 벽에는 쿠팡이 미국 회사로서 미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는 내용과 파트너 기업들의 로고가 진열되어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리안/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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