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최근 한 달 동안 10조원 넘는 자금을 채권시장에 집어넣었다.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끌어모으던 대기업이 ‘매수 큰손’ 역할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채권시장에선 ‘반도체 머니’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2일 진행된 삼성증권 회사채 수요예측에 약 30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이 이달 발행할 1조3000억원 규모 공모 기업어음(CP)에서도 SK하이닉스가 수천억원의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다. 당초 4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SK하이닉스의 투자 의향을 들은 뒤 조달 방법을 바꿨다. CP는 통상 1년 미만으로 사모시장에 발행되지만, 만기가 1년을 넘으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공모로 발행한다.
증권사가 자체적으로 추산한 SK하이닉스의 최근 한 달간 채권 투자 규모는 10조~15조원에 달한다. 이는 증권사가 회사채 수요예측 참여 내역 등을 취합해 추정한 수치다. SK하이닉스가 랩이나 신탁 계좌에 자금을 집어넣으면 증권사가 회사 측의 요구에 맞춰 회사채 개별 거래에 참여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투자 대상도 다양하다. 증권사 회사채와 CP는 물론 금융채, 한전채 등도 함께 사들였다. 신용등급 AA급 이상 우량 대기업 회사채에도 자금을 집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부터 채권시장에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증권사 CP와 여신전문금융회사채 등 만기 1년 미만의 단기물 위주로 투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투자 범위를 넓혀 만기 1~3년 회사채까지 사들이고 있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기업은 통상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만기 1년 미만의 짧은 채권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다. 업계에서 SK하이닉스를 적극적인 채권 투자자로 평가하는 배경이다.
SK하이닉스의 매수세 덕에 회사채시장은 안정을 찾았다. 최근 단기자금시장은 흐름이 불안했다. 한국투자증권의 1일 만기 CP 금리가 연 4%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주식시장 활황으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증권사는 유동성 관리를 위해 CP와 단기채 발행을 늘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조달금리도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증권사 회사채와 단기채 등을 사들이면서 시장의 수급 부담을 일부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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