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쟁 2.0
하정우·한상기 지음, 한빛비즈 펴냄
흔히 인공지능(AI)이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통제가 불가능한 핵 전쟁 같은 극단적 상황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I가 가져올 파멸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훨씬 더 조용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AI 의존성이다. ‘챗GPT’의 등장으로 AI는 우리 일상 곳곳까지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더 심각한 문제는 AI가 틀린 내용을 내놓거나 편향적인 답변을 제공해도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우리의 능력과 의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AI의 승기를 잡는 국가가 세계 패권을 손쉽게 쥐게 될 수밖에 없다.
‘AI 전쟁 2.0’은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 등을 지낸 새 정부의 하정우 초대 AI미래기획수석과 컴퓨터공학자이자 AI 전략 컨설팅 전문가인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가 AI 세계 전쟁을 둘러싼 핵심 주제에 관해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두 사람은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AI 생태계의 현주소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AI 패권 전쟁과 국가별 AI 전략, 빅테크 기업들의 AI 지형도를 두루 짚으면서 AI 시대 리스크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난 수년간 AI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면서 주요 국가들의 AI 전략에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다. 어떤 국가들은 AI 주권을 강조하면서 정책적 변화를 꾀했고 이는 실제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AI 빅테크 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미국은 ‘미국이 AI 분야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는 큰 틀 아래 조 바이든 정부가 도입한 AI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일단 개발하고 고민은 나중에 하자’는 식으로 초대형 AI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오픈AI, 소프트뱅크, MGX, 오라클 등이 참여하는 이 사업은 1000억달러 규모로 시작됐고 4년 내 최대 5000억달러의 민간 자본이 투입될 예정이다. 강력한 AI 컴퓨팅 인프라스트럭처를 통해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일반지능(AGI)’을 개발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데이터센터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미국 공화당에서는 해외 기업이라 하더라도 중국 자본이 들어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량 구매하고 AI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에 미국 자본이 투자하지 못하도록 제안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 대표는 “우리나라는 미국 동맹국으로 분류돼 수출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면서도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온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카카오”라고 지적했다. 이런 기업이 GPU 구매량을 급격히 늘린다면 미국의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미국이 이처럼 중국뿐만 아니라 중국 자본이 흘러들어간 기업과 국가까지 경계하는 것은 딥시크 같은 중국 회사들의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 때문이다. 실제로 딥시크는 올해 초 챗GPT 개발 비용의 5.6% 수준으로 개발한 챗GPT급 성능의 생성형 AI를 공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하 수석은 “중국의 AI 전략이 다른 나라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이라며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추진하라고 지시하면 중국의 모든 기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국가가 보유한 데이터뿐만 아니라 기업 데이터까지 정부가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아마 중국뿐일 것”이라고 짚었다.
두 사람은 AI 전쟁 시대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글로벌 수준의 AI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최고급 AI 연구 인재 양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KAIST, 서울대 등의 AI 대학원에서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더라도 이들이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내에 남지 않고 대부분 해외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하 수석은 “연구 환경이 더 좋고 뛰어난 연구자가 많으며 처우도 좋고 GPU 같은 인프라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는 혁신적 연구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니 우선 이 인재들을 잡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