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日서 사랑 받으며 쑥쑥… 소설 이어 詩도 알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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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전문 일본 책방 10주년
‘책거리’ 김승복 대표의 도전기
출판사 세워 ‘채식주의자’ 등 펴내… 10년 걸려 박경리 ‘토지’ 전집 완역
다양한 韓문화 소개 사랑방 역할도… 한국시인 초청 체류 프로그램 시작

일본 도쿄 진보초에 자리 잡은 ‘책거리’는 일본 유일의 한국문학 전문 책방으로 양국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2019년 책거리를 찾은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왼쪽)가 책거리 현판 앞에서 김승복 대표와 사진을 찍었다. 김승복 대표 제공

일본 도쿄 진보초에 자리 잡은 ‘책거리’는 일본 유일의 한국문학 전문 책방으로 양국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2019년 책거리를 찾은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왼쪽)가 책거리 현판 앞에서 김승복 대표와 사진을 찍었다. 김승복 대표 제공
지난해 10월 한산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남 통영시의 산 중턱. 가을 햇살이 내린 봉분 둘레에 일본인 30여 명이 섰다. 손에는 책을 한 권씩 든 채였다. 제목은 ‘土地’. 일본인 독자들이 일본어로 완역된 ‘토지’를 들고 박경리 작가(1926∼2008)의 묘소를 찾은 것.

위아래로 검은 옷을 맞춰 입은 한 단발 여성이 봉분으로 다가가 입을 뗐다. 한국말이었다. “선생님, 저희가 스무 권 무사히 잘 만들어 왔습니다.” 일본에서 유일한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구온출판사 대표이자 한국문학 전문 책방 ‘책거리’의 대표인 김승복 씨(56)였다.

김 대표는 지난해 ‘토지’ 일본 독자들과 함께 경남 통영 박경리 작가의 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통영=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김 대표는 지난해 ‘토지’ 일본 독자들과 함께 경남 통영 박경리 작가의 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통영=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그가 2015년 7월 7일 일본 도쿄 진보초에 문을 연 ‘책거리’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최근 첫 에세이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달)도 펴낸 김 대표를 15일 화상으로 만났다. 김 대표는 자타 공인 ‘일 벌이기’ 선수. 2014년 착수해 지난해 9월 완성한 ‘토지’ 완역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토지 마지막 권의 책장을 덮자마자, 강원 원주로 날아가 선생의 따님인 김영주 토지문학관장(1946∼2019)에게 번역 출판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토지 팀’을 꾸려 10년 동안 이끌었는데, 2016년 일본 현지에서 출간된 ‘토지’ 1·2권은 일본도서관협회 추천 도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달 7일 ‘책거리’ 10주년을 축하하며 한강 작가가 보내온 축전. 김승복 대표 제공

이달 7일 ‘책거리’ 10주년을 축하하며 한강 작가가 보내온 축전. 김승복 대표 제공
한강 작가의 책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것도 김 대표다. 2007년 구온출판사를 차리고 2011년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채식주의자’를 냈다. 출판 에이전트를 겸하고 있는 그가 판권을 중개한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저)는 일본에서 6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책거리’ 서점은 도쿄에서 다양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해마다 약 100회의 행사를 개최하는데, 문학 위주지만 해금 연주가의 연주회도 열렸다. 안상수 디자이너가 한글 폰트를 강연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1991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 정보기술(IT) 솔루션을 일본에 판매하는 일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출판업으로 전업했다. 당시엔 “밤새도록 만든 책이 서점에 나갔다가 반품으로 돌아오는 일도 허다했다”고 했다. “저는 ‘1 더하기 1은 2’인 사회에서 살았던 거예요. 들인 시간만큼 돌아온다는 점에서요. 근데 출판업은 ‘1 더하기 1은 마이너스 10’도 돼요. 너무 재밌지 않나요, 이 엉터리 같은 계산이?”

어떻게 재밌단 말이 나오는 걸까. 그는 그 이유로 “예전엔 굉장히 좋은 솔루션을 팔아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는데, 첫 책을 내자마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우리를 인터뷰하러 오더라”고 했다.

“한국문학이 이렇게 사랑받고 커가는 것을 보는 거죠. 열심히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진보초 책방거리는 고서점이 약 150개 모여 있다. 백 년 넘은 책방과 출판사가 즐비한 이곳에서 서점의 열 살 생일을 맞은 김 대표는 다시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력해 한국 시인 레지던시를 시작했다. 매년 시인 한 명을 초청해 체류하는 두 달 동안 일본 현지 독자와 편집자를 만나게 주선하는 프로그램이다. 김 대표는 “한국 소설이 알려지기까지 10년 이상 시간이 걸렸다”며 “그 시간만큼 시에도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또 꽃이 피지 않을까”라고 했다.

“누나로서, 언니로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에세이를 썼습니다. 저처럼 한국이 아닌 곳에서 꿈을 펼치려는 젊은이들에게 ‘재미있게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하고 싶어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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