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화성보다 멀었던 유럽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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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화성보다 멀었던 유럽 고객

“이렇게 상세하게 답해준 회사는 처음 봅니다.” 제안서에 대한 질의응답을 마친 뒤, 유럽 고객이 남긴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수천만달러 규모의 고해상도 위성카메라 수출 계약을 맺었다. 대표를 맡은 지 5년 만에 거둔 가장 큰 해외 수주였다.

단순한 계약 규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전통적인 우주산업 강자가 자리 잡은 유럽 시장을 뚫었다는 점에서다. 유럽연합(EU) 밖에 있는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이 유럽의 국제 경쟁 입찰에서 선택받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약을 따낸 방식은 역설적으로 ‘한국식’에 가까웠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만으로 승부한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만나고, 빠르게 답하고, 상대가 묻기 전에 먼저 준비하는 방식으로 유럽 고객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의 시작은 2023년 2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글로벌 우주 콘퍼런스였다. 이곳에서 동유럽 국가의 위성 사업 정보를 접했고, 우리는 곧바로 연락해 현지를 찾았다. 하지만 지정학적 이슈 등으로 인해 당시 열린 타당성 조사 단계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부득이하게 포기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기회는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이어졌다. 지난해 해외 출장 중 전시장에서 동유럽 관계자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때 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 짧은 대화가 관계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그 뒤로 우리는 그 고객사를 만나기 위해 동유럽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회의실에서 우리가 먼저 꺼낸 말은 제안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들이 어떤 위성을 제작하려는지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다. 제안서 제출 후에는 질문이 올 때마다 그들이 내부 회의에서 마주칠 법한 질문까지 미리 가정해 자료를 준비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한 공급업체 수준을 뛰어넘었다. 기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최종 선택에는 사람 사이의 신뢰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성 프로젝트는 수년 단위로 이어지는 장기 사업이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파트너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파트너 관계는 일방적인 갑을 관계가 아니라, 고객사와 우리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배려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형성되는 것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계약 이후, 고객이 한국을 방문해 우리 시설을 직접 둘러봤다. 그날 이후 그들의 질문은 달라졌다. 단순한 검증을 넘어, 함께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위성 하드웨어를 넘어 AI 기반 솔루션에 대한 후속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의 계약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체계를 만들어가는 협력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우주로 향하는 기술을 만든다. 회사의 비전으로 화성 탐사에 기여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화성으로 가는 길은 멀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엔지니어 중심의 조직인 우리에게 화성 탐사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 고객과 거리를 좁히는 일도 쉽지 않다. 어려운 만큼 이번에 맺은 고객과의 신뢰 관계는 더욱 값지다. 글로벌 시장에서 선택받는다는 것은 성능을 증명하는 동시에,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팀으로 인정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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