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원수]‘BTS의 아버지’도 못 피한 중복·지연 수사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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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안을 경찰과 금감원이 동시에 수사
압수·구속영장 4번 기각, 18개월째 수사 지연
경찰이 시작하면 누구도 못 끝내는 구조 문제
수사 망치는 독주 욕심, 한 번 실패도 치명적

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BTS(방탄소년단)의 아버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하이브 IPO(기업공개)로 수천억 원을 따로 챙겼다는 의혹은 2024년 11월 처음 불거졌다. 사실관계는 간단하다. 2019년 6∼11월 하이브 주주들이 ‘당장 상장 계획이 없다’는 하이브 측 말을 믿고, 하이브 전직 임원 등이 설립한 사모펀드에 주식을 팔았다. 그런데 2020년 10월 하이브가 상장됐다.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했고, 사모펀드는 이때 차익을 실현했다. 방 의장은 사모펀드와의 계약에 따라 주식 매각 차익의 30%(약 1900억 원)를 받았다.

만약 상장 계획을 세워놓고 상장하지 않을 것처럼 속이고, 옛 주주들의 주식을 헐값에 사들인 뒤 상장 후 비싸게 팔았다면 위법 소지가 있다.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의 하나인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문가들도 사기적 부정거래에 대해 “쉬워 보이지만 실무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수사”라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미국법을 수입한 것인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일종의 ‘그물망(catch-all)’ 조항이다. 부정적 수단 등이 사용됐다는 것을 구체적인 인과 관계와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증권 범죄 수사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거래소, 검찰이 공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장 없이 계좌를 볼 수 있는 금감원, 거래 데이터 분석 전문인 거래소가 위법성을 6개월 정도 기초 조사한 뒤 금융위가 수사기관 고발 통보 여부를 결정한다. 방 의장 사건도 이런 순서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2024년 연말부터 경찰은 수사를 서둘렀다. “어려운 법이 아니다. 경찰이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경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수사 대상이 방시혁이라는 상징성이 없었다면 이렇게 했을까.

경찰 독자 수사는 시작부터 삐끗거렸다. 금융위 결정 전 하이브 본사 등을 압수하겠다며 두 차례 영장을 신청했다가 검찰에서 기각됐다. 지난해 7월 금융위가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 통보했고, 검찰은 금감원에 사건을 보냈다. 당시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넘겨달라고 했다. 영장 신청을 먼저 한 쪽에 우선권이 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경찰과 금감원이 동일 사안을 동시에 수사하고, 검찰까지 얽히고설킨 중복 수사가 시작됐다. 이후 수사는 더 상식적이지 않다. 경찰은 지난해 9∼11월 방 의장을 5번 조사했다. 피의자를 자주 부르면 증거보다 진술에 의존한다는 의심을 받고, 피의자가 수사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보여 구속영장 심사 때 수사기관에 불리하다. 첫 조사로부터 7개월 뒤인 지난달 경찰은 구속영장을 처음 신청했는데, 법리 검토 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다.

검찰은 첫 구속영장을 반려하면서 보완할 부분을 영장에 구체적으로 적었다. 개인 간 사기가 아닌 자본시장 전체에 미치는 행위라는 걸 보강하고, 부당이득의 정확한 금액을 산정하고, 방 의장과 공범 관계인 하이브 전 임원 관련 수사가 미진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찰 수사가 낙제점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경찰은 지적 사항을 고치지 않고 엿새 뒤 영장을 재신청했고, 영장은 또 기각됐다. 경찰이 세 번째 영장을 신청해서 다시 꺾인다면 경찰의 신청으로 영장심사심의위가 열릴 수 있다. 검사의 영장 기각이 적정한 것인지를 심사하는데, 심의위가 경찰의 편에 선 적이 거의 없다.

진짜 문제는 경찰이 한 번 시작한 수사를 어떤 수사기관도 끝낼 수 없는 구조라는 데 있다. 18개월째 수사 중인 경찰이 스스로 기록을 검찰에 보내야 사건에서 손을 떼는데, 그 전에 다른 기관이 개입하지 못한다. 경찰 수사 이후도 문제다. 금감원 수사가 촘촘하게 잘되고 있다고 하는데 검찰이 금감원의 기록을 송치받아 한꺼번에 수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금감원과 검찰이 순차적으로 조사할 수도 있다. 수사받는 쪽에선 끝없는 늪 같을 것이다.

경찰이 법령에 따라 권한 있는 분야를 먼저 수사하는 걸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증권 범죄는 다르다. 법망을 피하는 신종 기법에 빈틈없이 대응하고, 내부자 제보가 중요한 사건 특성상 증거 확보를 전방위적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협업 수사 프로토콜이 있는 이유다. 전문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에선 경쟁이나 반목보다 신뢰와 협업이 실체에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접근하는 길이다. 그걸 무시하고, 성과에 욕심을 내는 건 결국 수사를 망치게 된다. 단 한 번의 수사 실패가, 더구나 전 세계의 BTS 팬이 지켜보는 사건이라면, 수사기관의 신뢰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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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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