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임종 난민’ 시대, 집에서 맞는 존엄한 마무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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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삶의 마지막 단계, 자기결정과 최선의 의료’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미디어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제공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삶의 마지막 단계, 자기결정과 최선의 의료’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미디어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최근 동아일보의 ‘임종 난민, 갈 길 먼 존엄한 죽음’ 시리즈가 조명했듯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마무리가 아닌, 차가운 의료기기와 낯선 병실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연장된 고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 의학의 발전은 생명을 연장했지만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마비시켰다. 최근 발표된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민의 약 75%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물으면 대다수는 가족의 온기가 있는 ‘집’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 소망과 현실의 지독한 괴리,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마주한 ‘임종 난민’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14일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삶의 마지막 단계, 자기결정과 최선의 의료’ 미디어포럼은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했다. 기자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본 결과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우리 사회 임종 문화의 모순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문서에 갇힌 ‘자기 결정권’의 무력함이다. 현재까지 약 340만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차갑다. 국민은 종이 한 장이면 내 뜻대로 죽을 수 있다고 믿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가족의 반대나 의료진의 법적 책임 회피 때문에 무의미한 치료가 강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날 김장한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연명의료 결정과 시행 과정을 거쳐 사망한 42건의 사례를 분석해 발표했다. 현장에서는 ‘인공호흡기 착용’을 두고 환자 가족과 의료진 간의 갈등이 가장 두드러졌다. 인공호흡기 착용을 거부하면 응급실과 중환자실 입원이 불가능하다. 말기 환자의 인공호흡기 착용은 의사의 의무이므로 임종 과정으로 판단되기 전까지는 중단이 허용되지 않는다.

영양 공급을 위한 ‘콧줄’ 삽입을 둘러싼 환자와 의료진 간 마찰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콧줄을 거부했음에도 의료진은 영양분 공급을 중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족의 동의하에 콧줄 삽입을 시행한다. 이는 환자의 의사가 충분히 존중되지 않은 사례다. 내 죽음의 결정권이 타인의 손에 넘어가 있는 셈이다.

둘째, 의료진을 옥죄는 법적·제도적 경직성이다. 토론자로 나온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우리 연명의료결정법이 국가 중심의 과도한 통제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진이 의학적, 윤리적 판단에 따라 존엄한 임종을 돕고 싶어도 국가의 생명 보호 의무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연명의료 중단에 복잡한 조건을 걸어둬 방어적인 진료, 즉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많은 국가에서 연명의료 중단은 말기부터 가능하다. 현장에서는 ‘말기’와 ‘임종기’를 칼로 무 자르듯 나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 제도가 병원을 임종의 안식처가 아닌 법적 공방의 전장으로 만들고 있다.

셋째, ‘재택 임종’을 가로막는 돌봄의 공백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이 언급한 ‘병원 중심의 임종 구조’다. 현재 시스템은 병원을 벗어나면 모든 돌봄이 끊긴다. 집에서 임종하고 싶어도 통증 조절이 안 될까 봐, 혹은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환자들은 자신을 병원이라는 감옥으로 유배 보낸다. 보호자는 사망 진단서 발급 등 까다로운 행정 절차도 부담이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대리 의사 결정권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은 ‘고독사’ 아니면 ‘병원사’라는 극단적 선택지를 강요한다.

이제 우리는 ‘임종 난민’을 수용할 새로운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 토대는 바로 ‘지역사회’와 ‘가정’이다. 단순히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환자가 평소 지냈던 익숙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눈을 감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선 의료기관 중심의 수가 체계를 재택 호스피스와 통합돌봄 체계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난민이 아닌 주인으로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품격 있는 죽음’의 시작이다. 이번 심포지엄이 형식적 담론을 넘어, 우리 곁의 죽음을 병원 밖으로 끌어내는 실질적인 변화의 기폭제가 됐길 기대해 본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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