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은퇴와 새로운 시작,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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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은퇴와 새로운 시작, 그 사이

어느덧 은퇴한 지 2년이 지났다. 선수들이 필드를 누비는 걸 보면 “내가 저걸 어떻게 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프로골프 선수로서 살면서 수많은 결정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순간은 두 번이었던 것 같다. 첫번째는 2016년에 스윙 교정을 결심한 것. 두 번째는 은퇴 시기를 정했을 때다.

은퇴를 처음 떠올린 이유는 어느 순간 내가 골프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미국에 처음 간 2012년 이후 가장 긴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짐을 싸고 풀지 않아도 되고, 늘 내 침대에서 잠들 수 있는 사소한 생활에 행복을 느꼈다. 집에 오면 사람의 온기가 있다는 것도 참 좋았다. 팬데믹이 소강 상태를 보이던 2020년 11월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치른 LPGA 두 경기에서 만족스러운 성적도 냈다. 하지만 그때부터 공허함을 느낀 것 같다.

투어 양상도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엄청난 장타자는 아니었지만 늘 평균 이상의 비거리를 내는 선수였다. 투어에서 세대 교체가 일어나면서 내 비거리는 평균에 속하게 됐고 그에 맞춰 코스 세팅도 더 길게 변경됐다. 골프에서 비거리가 전부는 아니지만 비거리가 짧으면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작아진다. 그때부터 은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2016년 스윙에 큰 변화를 줬는데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무언가 더 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이것 저것 포기하면서 이렇게 훈련하는데도 성과는 이것밖에 나오지 않는가’라는 자괴감이 들었고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차라리 은퇴 시기를 정하고 그때까지 최선을 다한 뒤 투어를 떠나고 싶었다.

실제로 은퇴 시점을 결정하고 나니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은퇴 경기를 치르는 내내 ‘혹시 내가 골프를 포기하는 거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다. 다행히 투어를 떠나고 보니 이보다 좋은 시기는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은퇴 후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늘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은퇴자로서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격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시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늘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아오다가 목표가 사라지자 또다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기회를 얻어 일하다 보면 다시 열정을 갖는 분야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다양한 일에 도전했다. 다행히 코스 리노베이션을 위한 코스 디자인 컨설팅, LPGA 투어 해설, 골프대회 컨설턴트 등 여러 일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느낀 건 내가 참 호기심이 많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기회 속에서 뿌듯함과 기쁨을 느꼈다. 다만 한 가지에 깊게 몰두할 수 있는 에너지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만 35세 나이에 은퇴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스스로도 이상하지만, 지금은 재충전이 좀 더 필요하다. 골프 선수가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알고 무언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도록 에너지를 모아봐야겠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 커리어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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