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은주]“내가 뭐라고”

5 hours ago 3

인간 “질문자 잘못” 사례에 AI 절반 “네 탓 아냐”
아첨형 챗봇 답변 본 이용자들 자기 확신 강화돼
사과-잘못 바로잡으려는 의지는 오히려 낮아져
포용은 내 주장 관철 아닌 타인 이해에서 출발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인공지능신뢰성 연구센터 소장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인공지능신뢰성 연구센터 소장
예능인 이수지 씨가 최근 유튜브에 공개한 패러디 영상이 장안의 화제다. 가상의 유치원 교사 이민지에게 한 학부모가 항의한다. “우리 애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셨다면서요. 그 얘길 듣는데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손발이 벌벌 떨려서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당황한 이민지 선생님은 다급하게 해명한다. “당치도 않아요, 어머니. 저희는 원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든 묵찌빠를 하든 무조건 무승부로 끝내고 있거든요.” 야외 활동 중 한 아이가 모기에게 물리자 사색이 된 이민지 선생님이 소리친다. “누가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우리 애 가려워 죽어요!” 놀랍게도 “예능인 줄 알았는데 다큐”라거나 “이건 차라리 순한 맛”이라는 댓글이 쇄도했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정서·행동상의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을 가리키는 애칭이었던 ‘금쪽이’는 이제 자기 감정과 욕구만이 절대적이고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됐다. 주로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 문제로 지목돼 왔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까지 합세하는 모양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카네기멜런대 공동 연구진이 2026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는 AI 챗봇의 ‘사회적 아첨’ 현상에 주목했다.

연구는 세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대인 갈등 사례를 올려 누구 잘못인지 묻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수의 이용자가 “질문자가 잘못했다”고 판정한 사례들을 수집했다. 이를 11개 AI 챗봇에 제시하고 잘잘못을 가려 달라고 했다. 인간 커뮤니티가 명확히 “네 잘못”이라고 판정한 갈등 사례에서조차 AI는 절반이 넘는 경우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연구진이 별도의 지시문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용자 편을 들어주는 것이 AI 모델의 기본값으로 설정돼 있음을 방증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인간 커뮤니티에서 다수가 “네가 잘못했다”고 판정한 갈등 사례 네 가지를 골라 800여 명에게 자신이 그 시나리오의 주인공이라고 상상하며 글을 읽게 했다. 이후 사용자를 옹호하는 아첨형 응답과 다수 의견에 부합하는 비아첨형 응답을 무작위로 보여줬다. 아첨형 AI의 응답을 본 참여자들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비아첨군보다 62% 더 강했고, 사과하거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는 28% 더 낮았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800명에게 실제로 경험한 갈등을 떠올리게 한 뒤 AI 챗봇과 그 갈등에 대해 대화하게 했다. 아첨형 AI를 사용한 참여자들은 비아첨형 AI와 대화한 참여자들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25% 더 높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하거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는 10% 더 낮았다.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자기편을 들어준 AI를 더 신뢰했고, 응답 품질도 더 높게 평가했으며, 다음에도 그 AI를 사용하겠다는 의향은 13%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

대화 내용을 분석한 결과도 흥미롭다. 아첨형 AI는 갈등 상대방을 언급하는 빈도나 상대의 관점을 고려하라고 권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반면 비아첨형 AI는 지속적으로 “상대방은 이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는 식의 관점 전환을 유도하는 답변을 제시했다. 전자가 이용자를 자기 안에 가둔 반면, 후자는 이용자를 자기 바깥으로 끌어내 불편한 상황을 직시하게 만든 셈이다.

우리는 흔히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관용, 즉 나와 다른 존재를 참고 용납하는 태도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진정한 다양성은 형평(equity)과 포용(inclusion)으로 확장된다. 형평은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조건을 조정하는 것이고, 포용은 그들의 관점이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단지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이 온전히 내 재능과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요구한다. 어떤 가정에 태어났는가, 어떤 학교에 다녔는가, 어떤 몸을 가졌는가. 지금의 나는 이 모든 우연과 행운의 조합 속에서 가능했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자존감의 상실이 아니라 정직한 자기 이해의 시작이다.

개인 통산 5편의 1000만 영화를 탄생시킨 배우가 자신이 사는 빌라의 통장을 맡아 동네 민원을 처리했다는 일화가 뒤늦게 회자 됐다. 해당 방송에서 한 출연자가 “형이 그런 것까지 해?”라고 놀라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지가 뭐라고.”

5월, 문화다양성 주간이 돌아온다. 내가 최고라고 끊임없이 치켜세워지는 환경에서는 나와 삶의 조건과 경험이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내 안의 금쪽이가 불쑥 튀어나오려 할 때면 한 번쯤 되뇌어볼 만하다. “내가 뭐라고.”

동아광장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사설

  • 횡설수설

  • 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

    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인공지능신뢰성 연구센터 소장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