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성에 '선택 가능한 군복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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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여성에 '선택 가능한 군복무' 길을

저출생에 따른 병역 자원 부족이 국가 안보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국군 상비병력은 지난 6년간 11만 명 줄었다. 20년 뒤엔 군 복무 대상 남성이 연간 1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이미 전투부대 충원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특단의 대책이 불가피하다. 최근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여성의 병역 참여 확대 논의가 활발하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여성 징집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논의 방향은 강제적인 징병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자원 복무’에 가깝다. 필자가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에서 골자는 여성도 현역병으로 자발적으로 지원해 복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자는 것이다. 현행 제도상 여성은 장교, 부사관으로 복무할 수 있지만 일반 병사로는 지원할 수 없다. 개정안은 병무청장과 각 군 참모총장이 성별에 관계없이 지원자를 선발하도록 제도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희망하는 여성에게만 문을 열어 주자는 것으로, 성별 갈등을 불러올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인재의 참여로 전력이 보강되고, 군 내부의 다양성과 전문성도 커질 수 있다. 정보, 통신, 의무, 공병 등 특정 분야에서 여성 인력이 강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인력 운용의 유연성과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국방부가 여성 현역병 운영 실태를 매년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 것도 제도적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다.

물론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군 시설과 장비가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생활관, 위생시설 등 인프라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 또 실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지원할지 불확실하다. 지원자가 적다면 실효성이, 많다면 관리 시스템의 안정성이 문제 될 수 있다. 성별 갈등이나 인권 문제에 세심한 대비도 필요하다. 아울러 병역 제도 논의는 군가산점제와 함께 가야 한다. 청년 세대의 군 복무 부담을 고려할 때 국가가 실질적 보상을 제공해야 하며, 이는 여성 현역병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병역 의무와 사회적 기회의 균형을 맞추는 장치가 될 것이다.

여성 현역병제는 단순한 병력 보강책이 아니다. 국가 정체성, 양성평등, 안보, 재정이 얽힌 거대한 의제다. 당장 입법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렵더라도 논의를 미루는 것은 안보 불안과 미래 세대의 갈등만 키운다. 지금은 ‘여성 징병제’라는 호도된 단어로 인한 소모적 논란이 필요하지 않다. 국민 누구나 원한다면 국방의 의무를 실천할 수 있는 합리적 길을 열어 주는 것, 그리고 청년 세대의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고 지속 가능한 병역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다. 병력 절벽 앞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는 자발적 참여의 문을 여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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