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문병기]‘수박 몰이’에 갇힌 민주당의 개혁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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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장

문병기 정치부장
“당 내부에 암약해온 ‘진짜 수박’이다. 즉결 제명 처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이달 8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자 한 친여 유튜브에는 박 의원을 ‘수박’으로 낙인찍고 조리돌림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수박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를 가리키는 멸칭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인 박 의원은 3대 특검(내란, 김건희, 채 상병 특검)이 수사해 기소한 사건을 전담하도록 하는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권분립 정신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해 총칼을 들고 들어온 것과 똑같다”고 했다가 지지층들의 파상 공격에 발언 이틀 만에 공개 사과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히든 수박, 왕수박… 꼬리 무는 ‘수박 몰이’

민주당 원내지도부를 이끄는 김병기 원내대표도 박 의원이 사과한 10일 특검법 합의로 강성 지지층들에게 “히든(hidden·숨겨진) 수박이었다”는 공격을 받았다. 김 원내대표가 야당으로부터 정부조직법 처리 합의를 받아내는 대신 특검 수사 연장 기한을 초안보다 15일 줄이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강성 지지층들은 “어떻게 내란 세력과 타협할 수 있나”라며 김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김 원내대표에게 재협상을 요구해 강성 지지층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전당대회에서 ‘왕수박’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과거 발언이 공개되면서다.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앞세워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와 경쟁했던 박찬대 의원도 강선우 의원에게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가 수박으로 낙인찍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수박 몰이를 추려본 것만 이 정도다.

한국 민주당에 수박이 있다면 미국 공화당에는 ‘라이노(RINO)’라는 표현이 있다. ‘이름만 공화당원(Republican in Name Only)’의 줄임말로 포퓰리즘 성향이 강했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공화당을 이끌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라이노 몰이’를 무기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을 결집해 공화당을 장악했다. 하지만 ‘라이노 몰이’는 자주 자기 파괴적인 광기로 돌변했다. ‘트럼프의 호위무사’로 불리던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2023년 민주당과 예산안 협상에 나섰다는 이유로 ‘라이노’로 공격받으면서 공화당 하원 지도부가 붕괴한 것이 대표적이다.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를 이런 극심한 당내 분열에서 찾기도 한다.

토론이 사라진 ‘개혁 드라이브’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다만 거기서 그치면 정치가 전쟁이 된다. 특히 이런 이분법적 적대 구도가 내부로 향하면 극단화로 이어지기 쉽다. ‘순수한 당원’ 대 ‘타락한 배신자’의 이분법은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레토릭이다.이른바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민주당의 무리수는 극단화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전당대회, 검찰개혁 과정에서 강성 지지층들의 ‘수박 몰이’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민주당에선 내란재판부 설치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를 두고 제대로 된 논쟁을 찾기 어렵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집권 여당에서 강성 지지층 주도의 극단화 현상이 나타나는 건 이례적이다. 팬덤의 크기가 곧 당내 권력으로 직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때 아닌 ‘수박 몰이’가 이른 분열의 신호는 아닐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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