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완준]혐중시위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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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곳곳이 혐중(嫌中)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명동, 중국인 동포들이 많이 사는 대림동은 물론 잠실에서도 중국인에 대한 노골적 혐오를 드러내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이들이 외치는 ‘하늘이 중공을 멸할 것’ 같은 구호는 표현의 자유로 넘기기엔 지나치다. 이런 피켓을 중국인 관광객들 얼굴 가까이 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 중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단체가 적지 않다. ‘중국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거나 ‘윤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주장 등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보였던 ‘윤 어게인’ 구호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윤 전 대통령은 ‘중국이 선거 부정에 연루된 주권침탈세력’이라는 강변을 앞세워 12·3 불법 계엄을 정당화하려 했는데, 지금 벌어지는 혐중 시위의 뿌리가 된 셈이다.

▷한국 내 반중 정서는 이전에도 있었다. 동아시아연구원(EAI)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2015년 16.1%에서 올해 71.5%로 증가했다.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를 기점으로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정서가 비이성적 혐오로 극단화하지 않도록 막는 게 국정이고 정치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은 반중 정서를 악용해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혐중을 부추겼고, 그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 유튜브를 중심으로 허위 정보가 우후죽순으로 확산됐다.

▷이런 혐오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463만 명으로 외국인 중 1위였다. 그런데 이제 겨우 상권이 살아나기 시작한 명동 상인들은 혐중 시위 탓에 중국인 관광객이 끊길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올해 5월엔 유엔이 공식 보고서를 통해 혐중이 심각하다고 한국에 지적할 지경에 이르렀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중국계 사람들에 대해 온·오프라인에서 인종차별적 증오 발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힌 것이다.

▷한국도 혐오의 피해자가 된 적이 있다. 일본에선 재일교포들이 줄곧 차별과 혐오에 시달렸다. 2013년경부터 본격화된 우익들의 혐한 시위엔 ‘조선인은 쓰레기’ 같은 극단적 표현이 난무했다. 미 조지아주 공장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도 외국인들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 세력 마가(MAGA)의 왜곡된 외국인 혐오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삐뚤어진 외국인 혐오가 기승을 부리게 놔둘 수 없는 이유다. 독일,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선 국적·인종 등을 이유로 증오를 선동하면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한다고 한다. 우리도 외국인 혐오를 근절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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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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