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 지킴이들] 〈4〉 국가 유산 사진작가 서헌강
“종묘대제는 원래 오밤중에 열려… 야간 촬영 거절당해 5년간 설득
우리 유산 잘 포장하는게 내 사명… 美서 영입제안 받고도 국내 남아”
이 작품을 찍은 건 30년간 전국을 돌며 국가유산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서헌강 사진작가다. 서 작가는 국가유산청 등의 의뢰를 받아 한 해에 촬영하는 문화유산만 6000건에 이른다. 마침 봄비가 추적이던 날 인터뷰에 응한 그는 “산 능선에 걸친 정자의 윤곽을 아련하게 담기 좋은 날씨”라며 “매일 잠들기 전, 문화유산을 렌즈로 담을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국가유산 전문 사진가’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서 작가에게 문화유산을 촬영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는 “우리 유산을 정성껏 포장해 사람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문화유산을 사진으로 접하는 만큼 “문화유산에 공감할 수 있게 하자”는 게 그의 촬영 모토다.
“예컨대 조선왕릉 사진은 단지 웅장한 역사성을 표현하는 데 그쳐선 안 돼요.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공원처럼 느껴질 때 오늘날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어요.”수많은 문화유산을 찍어 왔지만 항상 촬영이 물 흐르듯 되는 건 아니다. 허가를 받느라 몇 년씩 걸릴 때도 있다. 그 때문에 유달리 애착을 느끼는 사진이 종묘 정전의 밤 풍경이다.
“예전에는 조선시대 종묘대제가 밤중에 열렸어요. 그 장엄한 광경을 사진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죠. 국가유산청 관할인 정전에선 허가가 떨어졌는데, 조상을 모시는 종묘제례보존회(전주 이씨 대동종약원)가 거절하는 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5년 동안 설득한 끝에 카메라를 잡았을 땐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지요.”
종묘를 비롯해 경북 경주 불국사, 고 한형준 제와장(製瓦匠) 등 서 작가가 찍은 문화유산 및 무형유산 보유자 등의 사진들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서 작가는 그 비결을 “원하는 사진을 찍을 때까지 가고 또 간다”고 들었다. “1년 365일 빼곡한 일정에 맞추려면 식사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기 일쑤”라고 한다. 그의 사진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뮤지엄 등이 소속 사진가 자리를 제안한 적도 있지만 “우리 문화유산을 찍고 싶어” 거절했다. 그는 “서구권 박물관의 동아시아 수장고가 만약 100평이라면, 한국 유물은 캐비닛 1개 분량에 불과하다”며 “그 틈바구니에서 눈에 띄려면 사진을 볼 때 눈길이 멈추는 구간을 전부 기억해 뒀다가 반영하려 애쓴다”고 했다.서 작가는 중앙대 사진학과 재학 시절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다채로운 해외 문화유산 사진을 접하고 “누군가 필요로 하는 사진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졸업 뒤 잡지사에서 일하던 1995년, 지인의 권유로 국립민속박물관 유물 사진을 찍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그 일은 서 작가의 천직이 됐다.
평생의 과업으로 여겨 왔지만 아쉬운 대목도 있다. 후배들에게 권하려 해도 문화유산 사진가의 처우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해외로 우리 문화유산을 찍으러 나갈 땐 사비를 보태야 할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서 작가는 우리 문화유산의 ‘이미지 환수’를 위해 언제나 팔을 걷어붙였다.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에 최대한 보탬이 되도록 유물 1점당 수백 장을 촬영해요. 주어진 시간이 2, 3일에 불과하지만, 최대한 다양한 각도로 세부 사항을 담으려 노력하지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헌신할 겁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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