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해운대…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12 hours ago 4

여름 부산 해운대하면 해수욕을 떠올린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속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햇살은 너무 뜨겁기만 하다. 그래서 새벽과 한밤 중에 나만의 해운대를 즐기는 방법도 좋다. 그리고 곳곳에 숨겨져 있는 숲과 카페, 양조장을 돌며 즐기는 프라이빗한 여행은 어떨까.

● 해운대의 새벽과 광안대교 야경

서울역에서 KTX청룡 열차를 탔다. 주둥이가 날렵한 모습이 푸른 용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불을 뿜으며 달려가다 승천할 것같은 기세다. 지난해 5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KTX청룡은 2시간15분 정도면 서울~부산을 주파한다. 일반 KTX가 2시간반~3시간 가량 걸리는 것에 비하면 현재 가장 빠른 부산행 열차다. KTX청룡의 우등실엔 비행기처럼 좌석 뒷면에 화면이 설치돼 뉴스, 드라마, 음악, 유튜브도 감상할 수 있다.

KTX청룡을 타고 코레일관광개발에서 새롭게 개발한 2박3일 부산 ‘명작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해 부산여행에 나섰다. 매월 2차례 여행과 체험을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와 외국인 개별자유여행(FIT) 관광객들을 겨냥한 프리미엄 부산 해운대여행 프로그램이다.

한여름 해운대는 새벽부터 분주하다. 오전 5시인데도 훤하게 밝아오는 해변에는 산책과 조깅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선캡을 쓴 여성부터 상의를 벗은 외국인 남성까지. 최신 여행 트랜드인 ‘런트립(Run+Trip)’ 현장이다. 해운대 미포 해변으로 나가니 달맞이고개에서 떠오른 태양이 초고층 마천루 엘시티에 가려 동백섬까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엘시티 그림자를 따라 해변을 달리다 보니 백사장에 검은색 지프자와 군용 위장막같은 것이 보였다. 해변에 웬 군사시설? 자세히 보니 채널A 예능프로그램인 ‘강철부대 해운대 챌린지’ 체험시설이다. 8월31일까지 최영재 교관 등 강철부대 출연자 10명이 상주하며 타이어 뒤집기와 그물 넘기, 밧줄타고 오르기 등 16개 유격훈련 코스에 관광객들도 도전해볼 수 있는 여름휴가 특별 이벤트다.

해운대의 아침을 만끽하며 달리다보니 동백섬에 도착했다. 웨스틴조선호텔을 지나 비탈길을 오르니 서울 남산순환도로처럼 동백섬을 한바퀴 돌 수 있는 포장도로를 발견!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달리다보니 APEC누리마루하우스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멀리 광안대교가 보이는 수려한 풍경이 펼쳐진다. 옆에 계신 할아버지는 달맞이 고개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주어짐에 감사를!

동백섬에 있는 해운대 등대 아래쪽 바위에는 9세기 신라말의 대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57~908)의 ‘해운대(海雲臺)’ 글씨가 새겨져 있다. 최치원이 가야산으로 입산하러 가다가 바람과 구름, 달과 산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서 대를 쌓고, 글씨를 새겨넣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한시간 만에 해운대 미포에서 동백섬까지 한바퀴 돌고 오니 왕복 5.8km가 찍혔다.

해운대 여름 바다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은 야경이다. 붉은색 노을이 질 때면 동백섬 옆 ‘더베이 101’의 야외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사람들은 마린시티 마천루 아파트의 불빛이 들어오는 장면을 넋놓고 바라본다.

그룹 코나(KONA)의 레전드 시티팝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불멍’ ‘물멍’도 아니고 해변 아파트 조명을 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도시의 불빛도 스펙터클한 풍경이 된다는 사실을 이곳에 오면 깨닫게 된다.

해운대에서 더 멋진 야경을 보는 방법은 광안대교 앞을 한바퀴 돌고 오는 요트투어다. 대부분 요트는 부산 수영만에서 출발하지만, 동백섬 ‘더베이 101’에서 출발하는 요트도 있다. 오후 7시 반쯤 출발하는 선셋 요트를 타면 해질녘 노을과 야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요트가 파도에 출렁거리며 출항하자 마린시티의 야경이 뉴욕 맨해튼이나 홍콩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황홀하다. 보랏빛 조명으로 빛나는 광안대교 아래로 모여든 요트에선 불꽃을 쏘아댄다. 바닷물 위에서 ‘불꽃멍’을 하는 시간이다. 광안리 해변을 장식하는 수많은 불꽃은 여름밤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어 흩어져간다.


● 대나무 숲에서 만난 멕시코 소녀들부산 기장군 철마면의 아홉산숲은 여름에, 그것도 비올 때 찾기 좋은 숲이다. 대나무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시원하기 때문이다. 남평 문씨 문중이 400년간 가꿔온 아홉산숲은 금강소나무 군락과 맹종죽 숲이 잘 보존돼 있어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대숲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귐 소리, 청량한 숲의 향기, 푸른하늘과 초록색 댓잎…. ‘또다른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다. 휴대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다.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에서 주윤발과 장쯔이가 춤을 추듯 날아다니며 결투를 벌이던 대숲도 생각나는 시간이다.

대나무숲을 구경하다보면 굿터에 도착한다. 대나무는 뿌리가 잘 번지기 때문에 영역이 계속해서 넓어지는데, 숲 가운데 이상하게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렇게 대숲 안쪽에 둥근 마당이 생긴 곳에 아홉산 산신령의 영험이 있다고 믿었고, 궂은 일이 있을 때마다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굿터 가운데에는 돌로 된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간지주의 양쪽 높이가 서로 달라 더욱 신기해보인다. 이 당간지주는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에서 평행 세계로 넘나들던 차원의 문의 역할을 했다.

맹종대숲 평지대밭 굿터의 당간지주는 요즘엔 최고의 포토존이 됐다. 까르르 웃으며 포즈를 취하던 외국인 소녀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멕시코에서 온 친척 자매들인데 드라마 ‘더 킹’의 주인공 이민호를 좋아하는 한류팬이란다. 그래서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파친코’ 등 이민호가 나온 드라마의 촬영장소를 찾아다니며 여행 중이라는 대답. 한류의 파워는 지구 반대편에서 부산 기장의 대숲까지 찾아오게 만들 정도로 대단하다.

이처럼 해운대는 서울 못지 않게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미포에서 블루라인파크 모노레일 열차를 타면 갈 수 있는 청사포 철길 건널목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햇살에 비친 은빛 윤슬이 반짝거리는 바다와 열차, 그리고 횡단보도…. 동해남부선 폐선을 활용한 블루라인 열차가 지나갈 즈음이면 청사포 철길 건널목 횡단보도에는 순식간에 휴대폰을 든 사람들로 꽉 찬다.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서 있던 바닷가 철길 건널목과 비슷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슬램덩크에서 이 장면은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 있는 가마쿠라코코마에역(鎌倉高校前駅) 앞 철길이 모델이다. 도쿄 교외에 후지산 뷰가 보이는 해변 철도역을 찾는 사람들 못지 않게, 부산 청사포에서도 바다와 열차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먹거리다. 해운대 지역 특산주를 만드는 ‘양조장 기다림’에서는 유럽의 와이너리처럼 다양한 수제 막걸리를 시음하고, 막걸리 칵테일과 캔막걸리를 만들어보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양조가 조태영 씨는 직접 마이크를 끼고 한국의 전통주인 ‘삼양주(三釀酒)’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다. 쌀과 누룩, 정제수를 넣어서 밑술을 담고, 그 위에 또다시 쌀과 누룩을 넣어 ‘덧술’을 만들고, 그 위에 또다시 쌀과 누룩을 넣어 ‘추가 덧술’(3차 담금)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총 240시간 발효, 100일간의 저온 숙성을 거쳐 탄생한 수제막걸리는 쌀 본연의 고소하고 깊은 풍미와 과일과 꽃향기까지 느낄 수 있다. 특히 막걸리에 우유, 연유, 얼음을 넣고 쉐이크에 흔들어 크림이 생긴 막걸리에 시나몬과 땅콩가루를 얹어 마시는 칵테일 만들기 체험도 흥미롭다.



●맛집
=횟집으로 유명한 해운대에서도 한우 맛집 경쟁이 치열하다. 해운대 쇠고기 집의 원조는 ‘해운대 소문난 암소갈비’다. 1964년 창업했으니 50년이 넘은 집이다. 그런데 인근에 ‘거대갈비’가 신흥강자로 등장했다. 쇠고기의 원재료 질도 중요하지만 직원이 1대1로 직접 대면해서 숯불에 구워주는 솜씨도 프로급이다. 숯불로 굽되, 육즙은 안에 가두는 것이 핵심노하우.


부산 기장군 일광읍의 칠암앞바다에 위치한 ‘칠암만장(七岩鰻匠)’은 장어구이 전문점. 인근에 대숲으로 유명한 아홉산숲이 있어서, 장어를 대나무 숯불로 굽는다. 초벌구이를 한 장어에는 10년 숙성된 씨간장에 한약재를 넣고 열시간 이상 끓여서 만든 갈색소스가 발라진다. 장어구이와 함께 곤드레솥밥, 가지솥밥, 소고기 솥밥, 가리비가 들어간 해산물솥밥을 골라서 먹을 수 있다.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부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