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점검 업체 동반 못하게
가족 동행때도 증명 요구해
출입제한 혼란·갈등 커지자
정부 "연내 점검기준 마련"
예비부부가 신축 아파트 사전점검을 함께하려면 웨딩홀 계약서나 청첩장을 제출해야 한다. 계약자와 동행한 부모 혹은 자식이라도 가족관계증명서를 지참해야 하며, 형제자매는 추가 서류까지 요구받는다. 계약자 대신 가족이 대리인으로 방문할 경우에는 계약자 인감이 날인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까지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대기업 서류전형을 방불케 하는 까다로운 사전점검 입장 조건에 입주예정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15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평택시에 공급되는 A아파트 시공사 측은 오는 18~20일 진행되는 사전점검을 앞두고 하자점검 대행업체 등 제3자 동행을 전면 금지하고, 계약자와 가족만 출입을 허용한다고 공지했다. 이러한 까다로운 규정에 입주예정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입주예정자 B씨는 "시공사 측에서 입주민들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계약자 본인만 입장을 허용하겠다는 이야기까지 했다"며 "수천만 원대 자동차를 살 때도 전문가와 함께 출고점검을 하는데, 수억 원대 아파트에서 이를 막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시공사 측은 안전을 이유로 들었다. 해당 단지 시공사 관계자는 "외부인이 점검 작업이나 사전 인테리어 시공을 진행하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시공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건비와 원가 상승,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 자재 가격 상승이 이어지는 가운데 '입주 전 사전방문 통제'를 둔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현행 주택법상 사전점검 때 제3자 동행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입주예정자가 전문가를 동행해 점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시공사가 이를 제한하는 것도 불법은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 산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가 처리한 공동주택 하자 관련 분쟁사건은 2019년 3954건에서 2023년 4559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1~8월 처리한 사건만 3525건으로 평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지난해 경기 양주시의 한 아파트는 시공사가 사전점검 기간 입주예정자 본인과 그 가족만 출입할 수 있다고 일방 통보해 입주예정자들과 분쟁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천안시의 한 아파트 시공사도 사전점검을 앞두고 가족 외 대리인 점검은 불가하다며 출입 시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입주예정자들은 시공사가 법적 근거도 없이 사전점검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건설업계는 과도한 하자점검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자점검 대행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실적 부풀리기를 위한 무분별한 하자신청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하자 체크리스트와 점검 방법 등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처럼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대처는 한 박자 늦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사전점검 시 입주예정자 본인과 친족, 제3자(대행업체) 등 방문 가능한 주체를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건설사 관계자는 "세부 기준 없이 제3자 동행만 허용하면 현장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며 "표준화된 점검 매뉴얼을 마련하고, 이에 맞지 않는 점검 방법이나 장비 사용은 제한하는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전점검 시 대행업체 동반이 가능하도록 하는 동시에 대행업체의 자격을 규정하는 방안을 올해 추진할 예정"이라며 "관련 법안이 지난해 발의됐고 업계 의견을 청취해 하위 법령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