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 인력 이직 이례적 제동
퇴직 1년 6개월까지 취업·자문금지
직업선택의 자유보다 기술보호 무게
법원이 국가 핵심 기술을 다룬 반도체 설계 인력의 경쟁사 이직에 이례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그동안 법원은 근로자의 직업 선택 자유를 이유로 기업의 전직 금지 청구를 엄격하게 판단해 왔다.
수원지법 민사31부(부장판사 신우정)는 지난 9일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로 이직한 A씨 등 2명을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고 13일 밝혔다.
법원은 A씨 등 퇴직 후 1년 6개월이 되는 2027년 4월 30일까지 SK하이닉스와 그 계열사에 취업하거나 자문 등 어떠한 형태의 노무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 전직 금지 의무를 위반할 경우 하루에 500만원씩 삼성전자에 지급하도록 하는 간접강제 명령도 함께 내렸다.
가처분 대상이 된 두 사람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각각 10~11년 동안 근무한 중간관리자급 직원으로 낸드플래시 핵심 설계 업무를 담당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차세대 낸드플래시 제품의 설계 방향과 개발 일정 등 경쟁사에 유출될 경우 삼성전자의 기술 경쟁력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심 정보를 다뤄온 인력으로 파악됐다.
A씨 등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를 퇴사한 뒤 올해 2월 SK하이닉스로 자리를 옮겼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이들이 삼성전자 입사 당시 체결한 ‘퇴직 후 2년간 경쟁사 취업 금지’ 약정의 효력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최근 법원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는 취지에서 기업이 제기하는 전직 금지 청구를 엄격하게 심리하는 경향을 보여왔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삼성전자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낸드플래시 설계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이자 국가 첨단 전략 기술에 해당하는 점, 두 직원이 핵심 설계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던 점, 삼성전자가 이들을 핵심 인력으로 별도 관리해온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술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또 이들이 경쟁사 이직을 준비하면서 회사에는 진학 등을 이유로 퇴사 의사를 밝히는 등 실제 이직 사실을 숨긴 채 퇴직한 점도 판단에 불리한 사정으로 반영됐다.
재판부는 “해당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 내지 국가 첨단 전략 기술에 해당해 보호 가치가 더욱 크다”며 “경쟁업체에 관련 기술이 노출될 경우 동등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반면 신청인인 삼성전자에는 그에 상응하는 경쟁력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반도체 산업 분야의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전직 금지 약정이 채무자의 직업 선택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약정의 효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요구한 ‘퇴직 후 2년간’의 전직 금지 기간은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술 보호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경쟁 업체 취업을 2년 동안 제한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전직 금지 기간을 1년 6개월로 단축해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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