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들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재충전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합니다. 주 7일제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주 6일제로 조정하여 휴식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지난 4월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택배기사들의 휴식권 보장 및 과로사 방지 대책 촉구에 관한 청원' 글이 올라온 지 약 한달여 만에 동의가 5만명을 넘어섰다.
자신을 한 가정의 가장이자 택배기사라고 소개한 청원인 A 씨는 "최근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등 주요 택배사들이 주 7일 배송제를 시행하면서, 택배기사들의 과로와 휴식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이는 단순히 노동 강도의 문제를 넘어 생명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도 과로로 인해 많은 택배기사가 목숨을 잃었다"면서 "장시간 노동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야간 배송 금지와 같은 대책이 마련되었지만, 주 7일제는 이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 7일 배송제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추가 인력을 투입하여 현장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면서 "각 택배사의 근무조건이 다 다르기에 각자에게 맞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 씨는 "CJ대한통운의 경우 1인이 담당하는 구역이 작기 때문에 2인1조 3인 1조의 형식으로 배송 배분이 가능할 수 있으나 한진/롯데택배는 1인 담당 구역이 넓기 때문에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청원은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기준선인 5만명을 넘어 환경노동위원회 심사에 배정된 상태다.
◇ "20일 연속 근무…일은 늘어났는데 수입은 동일"
4일 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이달 1일부터 주 7일 배송 서비스 '매일 오네(O-NE)'를 전국 읍면 단위로 확대했다. 이로써 농어촌 지역 등 '매일 오네' 배송 권역은 전국 40개 시·군 134개 읍·면 지역으로 확대됐다. 자체 물류망으로 주 7일 배송을 해왔던 쿠팡과 비슷한 조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일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한 주 7일 배송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사측은 택배기사 수입 감소 없는 주5일 근무제를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남희정 택배노조 CJ 대한통운 본부장은 "(사측이 제시한) 4인 1조 실행안의 경우 택배기사 4명이 한 개의 조를 짜서 일-월 순환근무를 실시하고 격주 5일제를 시행하자는 안"이라며 "4명의 배송 구역을 한 명이 모두 배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안"이라고 반발했다.
이후 택배 현장에서는 "일하는 날은 늘어났는데 수입은 동일하고 죽을 맛이다"라는 푸념이 쏟아지고 있다. 쿠팡은 자체 매입상품을 보내는 거라 주말 배송이 의미 있는 건데 다른 택배기사의 경우 물량은 그대로인데 일하는 날만 늘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선 "택배사들이 위탁계약을 맺은 택배 영업점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택배기사 B 씨는 "그동안 CJ, 한진 등 택배사들은 주6일 배송을 해왔고, 일요일 배송은 하지 않았다"면서 "택배 영업점마다 배송 기사가 3인 1조, 4인 1조로 특정 배송구역을 정해 매일 배송 물량을 배분해 처리해왔는데 일요일 배송이 의무화되자, 상당수 택배대리점이 일요일 배송 물량을 자기 조의 1명에게 몰아주고 있는 업무 관행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현장의 배송 기사들은 "20일 연속 근무했다. 같은 조에 추가 인력이 없다"는 불만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 택배기사는 "어떤 대리점의 경우 원래 2인 구역을 1인이 커버하는 곳도 많은데, 주7일 배송으로 주 7일 일하는 상황이 오면서 업무 환경이 심각해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 물리적 업무강도 증가…수익 감소로 이어져
노조와 대리점 측이 협의를 마무리하게 되면 롯데택배도 주 7일 배송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이 지난 1월부터 주 7일 배송을 시작했으며, 한진택배는 4월부터 수도권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주 7일 배송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앞서 이를 시작한 두 회사에서 대리점과 노동자 간 적잖은 잡음이 들리자 롯데택배 역시 추가 수수료 문제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쉬는 날인 휴일에 일하는 만큼 이에 걸맞은 수수료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사측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수수료 비용이 늘어날수록 수익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 7일 배송을 가장 먼저 시행했던 CJ대한통운의 경우 추가 수수료 등으로 인한 비용이 늘면서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대비 22%가량 줄었다.
롯데택배를 운영하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강병구 대표는 지난 4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주 7일 배송 서비스의 고객 수요 조사를 하고 있다"며 "언제 하는 것이 효율적일지 고민"이라고 언급했다.
◇ 출혈 경쟁 그만 … 시스템 등 완비로 휴가 보장해야
업계에서는 "처음부터 원청인 택배사와 계약점이 '백업 기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조건으로 협의해 계약하고, 인력 투입에 있어 유연한 정책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켓컬리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의 경우 '백업 기사 시스템'을 운영, 택배 영업점들이 365일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업계 최초로 대리점이 ‘백업 기사’를 두어야 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CLS 직영 배송 인력인 쿠팡친구도 있어, 쿠팡 퀵플렉서는 용차 비용 없이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기사들은 주4일~6일 수준으로 근무하며 타 택배사 대비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다.
이커머스 업계는 지난 6월 3일 대선 당일 배송을 잠시 멈췄다. 쿠팡은 주간 로켓배송(오전 7시~오후 8시)을 중단했다. 쿠팡이 2014년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배송을 중단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쿠팡뿐 아니라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택배, 우체국 택배 등 주요 택배사들도 택배기사 참정권 보장 요구를 수용, 택배 배송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부분 택배사는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 2024년 총선 때 배송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업체 간 주 7일 배송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휴일 없이 배송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전국택배노조에서 "21대 대선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정치권이 이에 가세하면서 주요 택배사와 쿠팡이 배송 중단을 결정했다. 국민적 합의가 택배기사들의 주권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이어진 사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 사람이 계속해서 일주일 내내 일할 수는 없지 않겠냐"면서 "최근 유통업계는 쿠팡 등장 후 출혈 경쟁 중이다. 임금 등 이득을 더 주어 사람을 충분히 뽑으면 교대 근무 등이 가능해져 노동 부담이 줄고, 소비자는 더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