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지방의료 붕괴 막겠다더니…의료계 버티기에 '백기 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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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학년도 의대 정원이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으로 동결됐다. 지난해 2월 필수·지방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 정원을 5058명으로 2000명 늘린 지 1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의료계의 ‘버티기’에 정부가 의료개혁이란 원칙을 스스로 허물고 또다시 물러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낮은 수업 참여율에도 정부 ‘백기’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 조정 방향’ 브리핑을 열어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확정해 발표했다. 이 부총리는 “학생 복귀 수준은 애초 목표에 비해 아직 미진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의대 교육을 정상화해 더는 의사 양성 시스템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의대생 ‘전원 복귀’가 이뤄진다면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동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정부와 대학이 ‘휴학 투쟁’을 벌이는 학생들에 대한 강경 대응을 이어가자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이 사실상 전원 복학 신청을 마쳤고, 의대생 복귀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문제는 학생들이 ‘등록 후 수업 거부’로 투쟁 방식을 바꿨다는 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의대의 수업 참여율은 25.9%에 그쳤다.

◇더 이상 내줄 ‘카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모집인원 동결을 먼저 발표한 것은 더 이상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이끌어낼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집인원을 다시 5058명으로 되돌린다면 정부 말을 믿고 수업에 돌아온 학생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교육부가 원칙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로써 사회적 합의와 과학적 추계가 전제되지 않은 의대 증원은 1년2개월간의 의료 공백과 국민 피해만 남기고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은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포기한 날이자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의료계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준 상징적인 날”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의 ‘버티기’에 정부가 후퇴하는 선례가 향후 증원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의대생 유급 등으로 인한 교육 환경을 빌미로 27·28·29학년에 정원 동결은커녕 축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총리는 이와 관련, “2026학년도 모집인원은 조정됐지만 2027학년도 이후의 입학 정원은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에 따라 수급추계위원회를 중심으로 산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리플링 우려 현실화하나

정부와 대학은 학생들에게 이번이 ‘마지막 복귀 기회’라고 강조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유급이 불가피하다는 원칙도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강경파 의대생들이 학생들에게 투쟁 지속을 독려하고 있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로 대규모 유급 사태가 발생하면 교육계가 우려해온 ‘의대 1학년 트리플링’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도 1학년에 24·25·26학번이 겹쳐 등록할 경우 1만 명이 넘는 학생이 동시에 수업을 해야 한다. 교육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수업이 불가능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동아대 의대의 경우 내년 수강신청 시 26학번 신입생이 우선 수강신청을 하도록 학칙을 바꿨다. 26학번에 우선권을 주고 남는 자리가 있으면 24·25학번에 주는 방식인데, 이렇게 되면 24·25학번은 수업을 듣고 싶어도 수강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고재연/이미경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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