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결정하는데만 4년 허비"…韓 떠나는 자율주행 스타트업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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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결정하는데만 4년 허비"…韓 떠나는 자율주행 스타트업 [긱스]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자율주행 자회사 모셔널의 글로벌 기술 역량 순위가 급락했다. 글로벌 기업의 자율주행 수준을 평가하는 가이드하우스 인사이트에서 모셔널의 순위는 15위로 1년 새 열 계단 내려앉았다. 모셔널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비해 웨이모(미국)와 바이두(중국)는 각각 1, 2위를 차지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 수천여 대를 운행하면서 빠르게 데이터를 쌓아가는 사이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글로벌 톱 수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기술 순위 추락한 모셔널

“웨이모와 바이두는 작년 로보택시(무인 자율주행 택시) 배차를 대폭 늘렸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도시에 진출하죠. 반면 모셔널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산타모니카에서 진행하던 로보택시와 배송 프로그램을 중단했습니다. 상용화 시점은 2026년으로 미뤘습니다.”

기술 전문 시장조사기관 가이드하우스가 내놓은 주요 자율주행 기업에 대한 평가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발간된 ‘가이드하우스 인사이트 2024’ 리포트에서 현대차그룹과 미국 자율주행 기술업체 앱티브의 합작법인인 모셔널은 총점 60.3점을 얻었다. 1위인 웨이모(86.5점), 2위 바이두(82.3점)와 비교하면 차이가 상당하다. 평가 항목 중 시장 진입 분야에서 53점, 파트너 전략 분야에서 45점을 받아 주요 자율주행 기업 20곳 중 최하위 수준이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80~90점대 점수를 고르게 얻은 웨이모, 바이두와 비교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의미다.

종합 순위는 15위로 전년(5위)과 비교해 열 계단 하락했다. 모셔널은 2020년 설립 후 2023년까지 이 순위에서 5~6위를 유지해 왔다. 이번 순위 급락은 지난해 앱티브가 사업에서 발을 빼면서 최고경영자(CEO) 교체 등 부침이 많았고, 미국 내 상업 운행까지 중단된 영향이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관계자는 “모셔널이 기술을 개발한다고 수년째 성과를 못 내는 사이 웨이모와 바이두는 운행 실적을 쌓으면서 기술 수준을 높이고 있다”며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내년이나 내후년엔 글로벌 톱20에도 이름을 못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상용화가 시작돼야 자금이 몰리고 기술을 축적하는데 이런 사이클에 올라탈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웨이모와 바이두는 이미 운전자 없는 로보택시를 24시간 운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달리는 자율주행차만 2500대다. 중국은 우한시 한 곳에서만 500대(업계 추산)가 넘는 로보택시가 다닌다. 바이두가 공개한 6세대 로보택시엔 별도의 운전석과 운전대가 없다. 특정 도로에 한정해 보조 운전자가 탑승한 채 시험 운행만 반복하는 한국 상황과 차이가 크다.

◇ 주요 스타트업들 해외로

국내에선 자율주행차가 도로 운행으로 데이터를 쌓는 게 쉽지 않다.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를 설치하려면 시·도지사의 신청을 받아 실무위원회와 시범운행지구위원회의 심의 및 의결을 거쳐야 해서다. 위원회 구성부터 자료 준비까지 걸리는 시간은 하세월이다. 시범지구가 생겨도 주행 영상을 쓰려면 개인정보 비식별화 처리를 해야 해 고품질 데이터를 쌓을 수 없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따르면 미국의 자율주행 수준을 100점으로 볼 때 한국은 84점 수준이다. 업계에선 이를 통상 2~3년의 격차로 해석한다. 바이두는 누적 1억㎞, 웨이모는 3000만㎞에 달하는 자율주행 운행 기록을 쌓았지만 현대차그룹의 누적 운행 거리는 공개조차 안 되고 있다. 국내 임시 운행 자율차 허가 대수는 478대에 불과하고, 레벨4(특정 구간 내 자율주행)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실증 테스트가 어렵다 보니 기술 개발에서부터 밀린다는 것이 업계의 하소연이다.

대기업들도 자율주행 분야에 소극적이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원천기술 확보보다 SDV(소프트웨어정의차량)라는 좀 더 포괄적인 범위의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자율주행차를 소비자와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자율주행 기술이 없으면 해외 선두권 경쟁업체가 구축한 생태계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A2Z) 대표는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선 현행 제도 내에서 기존 교통 사업자와의 원만한 합의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제2의 타다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사업에 한계가 있다 보니 주요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은 해외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마스오토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중량 40t짜리 트럭 유상 운송 사업을 시작했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아랍에미리트(UAE) 바야낫AI와 중동에 자율주행 합작사인 A2D를 설립했다.

◇ 정부는 부처끼리 힘겨루기만

한국은 2019년 ‘미래 자동차 산업 발전전략’을 수립하면서 2027년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차량과 교통 시설의 통신 연결 방식을 두고 국토교통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힘겨루기를 벌였다.

국토부는 와이파이 방식, 과기부는 LTE(4G) 방식을 주장하며 대립했다. 2023년 12월에야 LTE 방식이 기술 표준으로 결정됐다. 최근 정부 자율주행 사업에 대해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은 “당초 계획보다 인프라 구축이 최대 6년은 지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최근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의 범위와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국토부는 전국 44개 고속도로(도합 5367㎞)로 자율주행 허용 범위를 넓혔다.

고은이/안정훈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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