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대에는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테크 전문 외교관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겁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에서 경제안보클러스터를 이끄는 박종희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는 25일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과 공급망 변화를 지정학 관점에서 연구하는 석학이다.
그는 한국 과학기술 외교의 실종 사례로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 목록(SCL)’ 지정을 꼽았다. “민감 국가 사안과 관련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교부가 에너지부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기술 이해도가 높고 다년간 네트워킹을 쌓은 과학담당관이 있었다면 민감국가 사태는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과학기술 외교를 지휘해야 할 국가안보실이 지나치게 ‘전통 안보’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갈수록 미국과의 기술 동맹이 중요해지는데 이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 교수는 미국 등 주요국 대사관에 과학기술 담당 전문 인력이 상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들이 전문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과 함께 현지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과학외교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 외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시키자는 방안도 제시했다.
박 교수는 기술 외교의 주요 타깃으로 과학기술 표준을 설정하는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와의 협력을 꼽았다. “아직 국제표준이 제정되지 않은 부문이 많은 양자컴퓨터, 차세대 반도체 등은 NIST와의 밀착이 한국 미래 과학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과학담당관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젊은 인력의 배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국제 감각을 갖춘 젊은 과학담당관이 미국 정치권과 행정부에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며 “현지 세미나에 참석해 명함을 주고받고 직접 만나 인사를 하는 게 과학기술 외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