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은 도요타에 이어 글로벌 자동차 생산 2위 타이틀을 자랑하는 공룡이지만, 속으론 오랫동안 곪아 왔다. 2019년 1100만 대에 이르던 글로벌 신차 판매량은 지난해 900만 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53.5%나 줄었고, 영업이익률은 2.8%에 불과해 차를 팔아도 거의 남지 않는 수준이다. 판매량은 현대차그룹이 턱밑까지 쫓아왔고, 영업이익은 현대차그룹에 이미 역전당했다.
▷이름 그대로 ‘국민차’인 폭스바겐이 벼랑 끝에 몰린 이유는 복합적이다. 2016년 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디젤게이트’로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고 무엇보다 내연기관 시대의 영광에 취해 패러다임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야심 차게 추진한 전기차(EV) 전환은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 실패와 리콜 사태로 스텝이 꼬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내 에너지 비용이 폭등하면서 생산성마저 바닥을 쳤다. 그사이 안방인 유럽 시장까지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 들어온 BYD 등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공세는 치명타가 됐다.
▷현재 폭스바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완성차나 차량 부품이 아니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자체 생산하는 소시지다. 1970년대 이후 회사 안팎에서 사랑받으면서 제품 번호(199 398 500 A)까지 부여됐다. 하지만 이젠 회사 매출은 뒷걸음질 치는데 소시지 판매량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식품 회사라는 씁쓸한 자조까지 나올 정도다. 결국 굴러가지 않는 자동차 공장을 억지로 돌리는 대신 과잉 생산능력을 줄이거나 생산 품목을 전환하는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폭스바겐의 몰락은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갇힌 거대 제조 기업이 산업 전환기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순 없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을 먹여 살려 온 전통 제조업들도 비슷한 궤적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경직된 노동 구조와 높은 인건비, 턱끝까지 추격해 온 중국의 기술력 앞에 우리는 과연 독일보다 경쟁력이 앞선다고 자신할 수 있나. 구조 개혁을 도외시하고 체질 혁신에 실패한다면 오늘 폭스바겐의 비명이 내일 한국 제조업에서 일상이 될 수도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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