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형 전시 ‘원피스 대해적시대 아시아 투어 in Jeju’가 서귀포시 법환동 워터월드 제주에서 지난 4일 막을 올렸다. 관람객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수심 약 20cm 물을 걸으며 밀짚모자 일당의 항해지인 그랜드라인, 어인섬, 임펠다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닷밀과 인큐베이스 스튜디오가 손잡고 선보인 국내 최초의 ‘워터 미디어’ 몰입형 전시다. 1997년 연재를 시작한 원피스는 누적 발행 부수 약 6억 부를 기록한 세계적인 만화 IP로, 관련 사업 규모만 연간 약 1조2600억 원에 이른다.
제주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 제주월드컵경기장에 내리자 원피스 애니메이션 한국 오프닝곡인 코요태의 ‘우리의 꿈’이 들려왔다. 입구부터 기대감을 안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바빴다.● 로그타운, 전설이 끝나고 항해가 시작되는 자리
“잘 찾아봐. 이 세상 전부를 그곳에 두고 왔으니까.”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와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며 발밑에 물이 찼다.
로그타운은 ‘시작의 거리이자 끝의 거리’로 불린다. 이곳은 로저가 처형된 자리이자 그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삶이 시작된 곳에서 끝났다는 아이러니가 오래도록 팬들 사이에서 회자돼온 설정이다.
● 그랜드라인 비치, 예측 불가능한 바다로
높은 천장까지 이어진 벽면 전체가 미디어아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까지 파도가 부딪히는 화면이 세밀하게 연출돼 있다. 바닥은 옛 사우나 시절 돌 바닥을 그대로 살려 물이 흘러도 미끄럽지 않았다.
원작 속 그랜드라인은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날씨가 수시로 바뀌는 예측 불가능한 바다다. 파도풀이라는 연출 역시 이런 설정을 반영했다.파도풀의 물결이 발끝에 닿았다 멀어졌다. 손을 맞잡은 가족들은 파도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밀짚모자 일당이 마주했던 모험의 시작을 잠시나마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 스카이피아, 구름을 만지며 꽃향기를 맡다
고향이 세계정부에 의해 초토화된 뒤 홀로 역사를 좇던 로빈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숨겨진 역사를 풀 실마리인 ‘포네그리프’를 얻는다.
꽃향기 가득한 이 공간이 실은 시리즈에서 가장 무거운 개인사 하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며 구름을 만졌다.
● 임펠다운, 물살을 헤치며 걷다
찰랑이는 물을 이겨내며 높은 성벽과 감옥 철창을 헤쳐 지나자, 처형을 기다리는 에이스의 조형물이 보였다. 평소 에이스를 좋아한다던 한 관람객은 “무릉도원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임펠다운은 ‘절대 탈출할 수 없는’ 대감옥으로, 작중 주인공 루피가 사형을 앞둔 형 에이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돌파했던 장소다.
이 탈옥이 이어지는 공간인 ‘마린포드’에서 벌어진 정상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물살을 이겨내며 창살을 뚫고 나오는 그 200m는, 루피가 감옥을 돌파하던 절박함을 경험해볼 수 있던 공간이었다.
● 마린포드와 3D2Y, 2년이 돼버린 3일의 약속
작중 등장하는 ‘3D2Y’는 “이별에 3일, 수련에 2년”이라는 뜻이다. 마린포드 전쟁에서 형 에이스와 최강의 해적 흰수염을 한꺼번에 잃은 밀짚모자 일당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힘을 기르기로 약속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반대로 부스에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섰다. 위아래로 조성된 정원과 벤치, 볼풀도 자리했다.
다양한 꽃들 사이에는 이전 일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설치돼 호평을 받은 흰수염의 추모비도 서 있었다.
볕이 드는 자리에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작중 가장 큰 상실을 견딘 밀짚모자 일당에게 필요했던 것은 잠깐의 휴식이었다는 은유다.
● 어인섬, 차별과 편견 딛은 공주 앞에서
부스 끝에는 높이 4~5m에 이르는 인어공주 ‘시라호시’ 조형물이 정교한 채색으로 실물처럼 서 있다. 시라호시는 어인섬의 공주로, 인간과 어인 사이의 뿌리 깊은 차별로 성 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인물이다.
이곳은 유독 조명이 어둡고 물줄기가 많았다. 시라호시까지 여러 장애물을 헤치고 걸어야 닿는 그 길이, 오랜 세월 그가 견딘 외로움을 잠시 몸으로 겪게 했다.
● 기어 5, ‘고무고무 열매’의 비밀이 밝혀지다
발 길이만 5~6m에 이르는 거대한 루피 조형물이 서 있었다. 사면이 온통 화면으로 둘러싸여 ‘최종 각성형’ 기어 5의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어 5는 루피가 먹은 악마의 열매의 반전이 드러나며 진화한 형태다.
이때를 기점으로 근육과 진지한 표정, 타격감에 집중하던 연출은 옛 미국 만화처럼 과장되게 바뀐다. 눈알이 튀어나오거나, 맞은 부위가 움푹 들어갔다 되돌아오는 식이다. 조형물의 크기가 유독 크고 익살스러운 것도 이 같은 특징을 반영했다.
● 에그헤드·엘바프 편, ‘전사들의 섬’에서 커피 한 잔
세계 역사의 감춰진 진실이 폭로되며 시리즈 전체의 이야기가 수렴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는 에그헤드의 주요 장면과 이제까지의 여정을 담은 영상을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마지막 공간인 ‘엘바프 편’은 옛 목욕탕 구조를 그대로 살린 굿즈숍이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샤워기와 때수건 등을 그대로 활용한 구조물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엘바프는 저격수 우솝이 어릴 적부터 동경한 ‘전사들의 섬’이다. 북유럽 신화의 화려한 장식과 연회의 온기가 묘사된 곳으로, 작중에서도 ‘최종장’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다.
곳곳을 꾸민 장식물들 사이로 관람객들이 커피를 마셨다. 옛 온천탕을 그대로 살린 테이블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앉아 연신 사진을 찍었다. 원작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보여주는 ‘이모셔널 신스’로 이번 전시는 막을 내린다.
● 밀짚모자 일당 따라 ‘첨벙첨벙’…내년 1월 3일까지
원작 팬이라면 그랜드라인의 파도와 임펠다운의 물살, 어인섬의 물줄기를 직접 체험하며 작품 속 모험을 걷는 색다른 경험이 될 듯하다. 원피스를 잘 모르는 관람객에게는 설정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물을 활용한 색다른 전시를 체험해볼 수 있다.
전시는 서귀포시 월드컵로 33 워터월드 제주에서 2027년 1월 3일까지 진행된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입장료는 성인 2만7000원, 청소년 2만4000원, 어린이 2만2000원이다. 36개월 미만 아동은 무료 입장 가능하며 제주도민은 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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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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