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미주리대 신형 연구용원자로 사업에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이끄는 한국 컨소시엄이 1000만달러 규모 원자로 초기 설계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여러 단계로 나눠 추진할 이 사업이 잘 진행되면, 보다 규모가 큰 다음 단계도 한국 컨소시엄이 자연스럽게 맡게 될 것이다.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으로 원자로 설계 기술을 역수출하게 된 것에 감회가 새롭다.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선정됐다는 점에서 더 큰 뿌듯함을 느낀다.
연구용원자로 역사는 20세기 초 과학혁명에서 시작한다.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구조가 점차 규명되고, 아인슈타인에 의해 상대성 이론이, 그리고 닐스 보어와 당대 천재들에 의해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원자 핵에 숨겨져 있는 막대한 에너지에 주목했다.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과 독일은 이 에너지를 먼저 활용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인류 최초 연구용원자로라는 타이틀은 이탈리아 출신 미국 과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시카고대 운동장 지하에 설치했던 시카고 파일-1이 차지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일환으로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이 원자로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페르미의 말과 같이 '검은 벽돌과 목재를 쌓아 만든 조잡한 더미'였던 그 원자로는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잡한 원자로를 통해 페르미는 1942년 우라늄 연쇄 핵분열이 지속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로써 원자력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 최초 연구용원자로는 1959년 미국 제너럴 아토믹스사로부터 도입한 트리가 마크-2라는, 원자력과 그 응용 기술을 배우기에 적당한 연구용원자로였다. 미국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를 모토로 연구용원자로 보급에 나섰을 때,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 상흔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한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였다.
당시 적은 나라 살림을 짜내고 미국 차관을 보태 연구용원자로를 도입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작은 연구용원자로이지만 한국인들은 이 원자로에서 시작해 실력을 갈고닦았고, 끝끝내 원자력 기술 자립을 이뤄냈으니 놀라운 성공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트리가 마크-2는 1995년 영구 정지한 뒤, 국가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현재는 박물관으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날 연구용원자로는 원자력이라는 범주를 넘어, 넓은 스펙트럼의 과학기술을 위한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트리가 마크-2에 이어 도입됐던 트리가 마크-3 연구용원자로를 거쳐, 자력으로 설계.건조한 연구용원자로 하나로가 현재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대전에 있는 하나로는 도입 당시 트리가 마크-2의 300배에 달하는 열출력을 가진 본격적인 연구용원자로며, 세계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병원에 보낼 암 치료제와 전력 반도체로 만들어질 소재를 생산하고, 배터리, 연료 전지, 문화유산, 심지어 요새 인기 절정이라는 양자 물질까지 다양한 대상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다.
물론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연구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로는 다목적 연구시설을 넘어 초 다목적 연구시설이라고 불릴만하다.
미주리대에서 새로 지을 연구용원자로는 단순한 교육용 시설이 아니다. 미주리대는 이미 성능이 좋은 다목적 연구용원자로를 운영하고 있으며, 암 치료제를 생산해 미국 전역에 공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비해 더욱 고성능의 차세대 연구용원자로를 설치하려고 한다.
하나로를 포함해 여러 연구용원자로 사업을 경험한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분야다. 한국 컨소시엄이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길 기대한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jmspark@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