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글로벌 자율주행 경쟁 한국형 지원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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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올해 3월 미국 컨설팅펌 가이드하우스 인사이트의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순위가 발표됐다. 미국 기업이 전체 70%를 차지하며 압도적 우위를 보였고 중국은 20%로 뒤따랐다. 유럽은 단 한 곳 대한민국도 간신히 오토노머스에이투지 한 곳만이 이름을 올렸다. 세계가 자율주행이라는 미래 산업을 향해 가속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여전히 경쟁의 변방에 머물러있다.

이 경쟁의 뒤처짐을 단순히 자동차 산업 발전 속도가 더디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자율주행차는 단순한 자동차 산업의 연장이 아니다. 인공지능(AI), 통신, 플랫폼 기술이 융합된 차세대 산업이자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분야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취하고 있는 전략은 그 무게에 비례해 충분히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생존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 논리에 맞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시장 조성 전략이다.

자율주행차 산업은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긴 시간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신산업이다. 세계 1위 구글은 25조원을 투자하고 있고, 2위였던 제너럴모터스(GM)는 20조원 넘는 투자를 하고도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초기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는 단순한 규제 완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1기 동안 자율주행과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완화와 친기업 정책을 추진했다. 테슬라는 이 시기에 적극적으로 성장하며 미래 모빌리티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직접 지원 정책을 통해 BYD 같은 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키워냈다. 중국 정부가 BYD에 지원한 금액은 2020년 약 3000억원에서 2022년 약 3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정부 주도 성장 전략에 힘입어 상하이모터쇼는 중국 자율주행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여실히 보여줬다. 샤오미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시범 차량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고, 바이두와 지리자동차는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도 스스로 주행 가능한 시스템을 선보였다.

BYD는 자체 개발한 고도화된 운전자 보조시스템을 탑재한 신모델을 공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고, 샤오펑은 고속도로 뿐 아니라 도심 일반도로에서도 적용 가능한 레벨4 수준의 솔루션을 선보였다. 이제 중국은 단순히 가격만 싼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력 모두에서 글로벌 선두권을 넘보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대한민국도 더 이상 과거처럼 중국을 단순 모방하는 존재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자율주행 기술을 추격하는 동안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시장을 조성하고 있었는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대표 사례가 바로 전기차 시장이다. 대한민국이 전기차 60만대 시대를 연 것은 단순한 기술 개발 결과만은 아니다. 매년 2조원을 웃도는 전기차 보조금 지원과 함께 공공기관 의무구매제도가 핵심 역할을 했다. 정부는 매년 전기차 보조금에 2조원, 수소차 보조금에 1조원 이상을 지원했다. 2016년부터 공공기관이 구매하는 차량의 50%를, 2021년부터는 100%를 친환경차로 채우도록 했다. 정부가 선도적 수요를 창출했기에 기업은 안심하고 생산과 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 산업에서는 아직 이러한 체계적 지원과 수요 창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2019년 12월 세계 최초로 레벨3 자율주행차 법규를 제정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증을 받은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지난 해 3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레벨4 자율주행차 법규를 마련했지만, 지원 없이 단순히 제도만 만든다면 같은 결과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레벨4 자율주행차 법규상 구매자는 정부기관과 운수사업자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실질적 지원과 시장 창출 없이 이들이 고가의 자율주행차를 도입할 이유는 없다. 법규 마련만으로 시장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초기 수요 창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대중교통과 공공서비스 인프라가 발달한 준공용제 국가다. 공공기관과 공공시설, 지방자치단체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정부가 정책적 의지만 갖는다면 비교적 빠르게 초기 자율주행차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일례로 세종정부청사 내부 셔틀을 자율주행차로 전환하고 서울대공원, 전국 주요 과학관, 혁신도시 거점 등에서 자율주행 셔틀을 운영하는 건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운행가능영역(ODD)이 명확한 구간부터 공공기관이 초기 수요를 견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 이는 과거 전기차 시장 성장 방식과 정확히 같다.

대한민국은 미국처럼 천문학적 자본을 가진 나라도 아니고 중국처럼 중앙집권형 체제를 가진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과 집중, 민간 혁신과 정부 전략적 지원의 조화를 통해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 문제는 속도와 결단이다.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는 정부가 직접 수요를 만들고 기업의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밀어줘야 한다.

자율주행차는 단순한 이동수단 혁신이 아니다. AI와 데이터, 통신 기반 미래 산업 구조 전체를 선도할 중심축이다. 대한민국이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놓친다면 단순한 산업 하나를 잃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경쟁력 자체가 후퇴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이다. 자동차 관련 세수만 해도 전체 세수의 15~16%를 차지한다. 교통세와 부가가치세, 자동차세 등 다양한 세목에서 발생하는 세수는 국가 재정 안정성과 직결된다. 자동차 산업은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중심이지만, 1967년 현대차 설립 이후 새로운 완성차 기업이 등장하지 못한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올해 대한민국이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미래를 걸 수 있을지 아니면 뒤처질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법과 제도 정비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 시장을 만들고 길을 열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미래를 결정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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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hjh@autoa2z.co.kr

〈필자〉한지형 대표는 한양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 연구소에 입사했다. 현대차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초 주·야간 자율주행, 서울·평창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후 오토노머스에이투지를 창업해 5년 만에 국내 1위, 세계 13위 독보적 성과를 창출했다. 현재 4차산업혁명위원회,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도 모빌리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모빌리티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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