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수용당하게 된 남아공 농장주 49명
전세기 보내 입국시켜…정부인사 마중
이민자에 가혹한 정책 기조와 대비 ‘빈축’
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계 백인 정착민들의 후손인 이들은 미국 행정부가 비용을 부담한 전세기로 이날 워싱턴 덜레스 공항으로 입국했다.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 등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직접 공항까지 나와 이들을 마중했다. 환영식이 열린 장소는 성조기의 색깔인 빨간색과 파란색, 흰색 풍선으로 장식됐다. 랜도 부장관은 “제 아버지도 1930년대 히틀러가 들어오면서 유럽 조국을 떠나야 했다”라며 “여러분은 이곳에서 꽃을 피울 것”이라고 이들을 환영했다.
이들이 ‘난민’ 자격으로 입국하게 된 계기는 올해 1월 마련됐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당국이 공공 목적 또는 공익을 위해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정당하고 공정한 보상을 약속하는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들은 전체 인구의 약 7%를 차지하지만, 개인 소유의 농장과 농업용 토지의 약 4분의 3을 소유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2월 “인종적으로 불리한 토지 소유자에 대한 불균형적인 폭력을 조장하는 증오적인 수사법이자 정부 조치에 따른 것”이라며 ‘역차별’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남아공에 대한 원조와 지원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아프리카너의 입국을 돕겠다고 밝혔다.사실상 모든 인도주의적 난민 프로그램을 중단한 트럼프 행정부가 백인인 이들에게만 유독 3달 만에 난민 자격을 부여해 입국시킨 것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강한 비판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식 당일 서명한 불법 이민자 추방 관련 행정명령에도 “미국은 대규모 이주민, 특히 난민을 수용할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아프리카너들이 입국한 당일, 미 국토안보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안보 상황이 개선됐다”라며 미국 내 아프간인들에 대해 임시 보호 지위를 종료한다고 밝혀 더욱 뚜렷한 대조가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남아공 백인을 난민으로 수용한 것과 관련해 “우리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라면서 남아공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이 우연히 백인이긴 하지만 그들이 백인인지 흑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남아공에서 백인 농민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땅도 몰수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이민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이것은 인종에 기반한 박해”라고 주장했다. 랜도 부장관은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인 것이 “미국이 남아공의 극심한 인종 박해를 거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가 입수한 국무부 내부 문서에는 이들 대부분이 “25년 전에 일어난 가정 침입, 살인, 차량 강탈 등 인종적 연관성이 있는 극심한 폭력을 목격하거나 경험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날 회견에서 구체적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한 법에 따른 토지 압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난민들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 아프간이배크(AfghanEvac)의 숀 반다이버 회장은 “미국의 난민 정책이 원칙과 정치 중 무엇에 기반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든다”라며 “잔혹하리만큼 명백한 위선”이라고 비판했다.로널드 라몰라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백인 남아프리카인에 대한 어떤 형태의 박해도 존재하지 않기에 이들(트럼프 행정부)은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다”라고 반박했다. 남아공 당국에서는 “남아공의 민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려 의도적으로 고안된 정치적 계략”이라고 반발이 나오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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