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에서 상대에게 한 게임도 내주지 않고 이기는 세트를 ‘베이글 세트’라고 한다. 상대 점수인 ‘0’이 베이글 모양이라고 해서 유래된 말이다. 두 세트 연속으로 6-0 승부가 나면 ‘더블 베이글’이다.
베이글 세트를 자주 만들기로 유명한 이가 시비옹테크(4위·폴란드)가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결승전에서도 ‘이가의 빵집’(Iga’s Bakery)을 열었다. 그는 13일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어맨다 아니시모바(12위·미국)를 불과 57분 만에 2-0(6-0 6-0)으로 완파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승상금은 300만파운드(약 55억8000만원).
윔블던 여자 단식 결승에서 베이글 세트가 나온 것은 1911년 도로시 체임버스(영국)가 도라 부스비(영국)를 꺾고 우승한 후 무려 114년 만이다. 메이저 대회 전체로는 1988년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슈테피 그라프(독일)가 나타샤 즈베레바(당시 소련)를 역시 2-0(6-0 6-0)으로 이긴 후 37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다.
시비옹테크는 이날로 여섯 번째 메이저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 그는 앞서 클레이(흙)코트에서 치러지는 프랑스오픈에서 네 번(2020·2022·2023·2024), 하드코트인 US오픈에서 한 번(2022) 우승했다. 시비옹테크가 잔디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 최고 성적은 2023년 대회에서 기록한 8강이다.
윔블던 징크스를 극복한 시비옹테크는 통산 여덟 번째이자 현역 선수 중에선 유일하게 하드·클레이·잔디 코트 메이저 대회 단식을 모두 제패한 여자 선수가 됐다.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흘리며 관중 앞에 선 시비옹테크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나는 윔블던 우승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우승이어서 저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시비옹테크의 이번 우승이 더욱 극적인 것은 1년 만에 이룬 반등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던 그는 지난해 8월 수면제 섭취와 관련한 도핑 양성 판정으로 1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뒤 급격히 내림세를 탔다. 한때 세계랭킹 8위까지 추락했고 4연패에 도전한 프랑스오픈에서도 4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시비옹테크는 이날 우승으로 자신의 메이저 대회 120번째 경기에서 통산 100승(20패)을 달성하는 기쁨도 누렸다. 이는 세리나 윌리엄스(미국)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윌리엄스는 2004년 US오픈에서 116경기 만에 100승을 쌓았다.
폴란드 선수 최초로 윔블던 여자 단식을 제패한 시비옹테크는 메이저 대회 단식 결승 무패 행진을 6전 전승까지 늘렸다. 프로 선수의 메이저 대회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 메이저 대회 단식 결승 전적 6전 전승은 마거릿 코트(호주)와 모니카 셀레스(미국)에 이어 시비옹테크가 세 번째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