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경북)=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토너먼트 코스의 모범답안이다.’
21일 경북 구미시 골프존카운티 선산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골프존 오픈이 ‘토너먼트 코스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철저한 준비와 완벽에 가까운 코스 관리가 선수와 갤러리 모두의 감탄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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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북 구미시 골프존카운티 선산에서 열린 KPGA 투어 골프존오픈을 찾은 갤러리가 잘 관리된 코스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사진=KPGA) |
박세하 골프존카운티 대표는 “선수가 14개 클럽을 고루 사용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2개월 전부터 러프를 기르고 페어웨이를 다듬은 한편, 그린의 경도와 스피드까지 조율해 대회에 최적화된 코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골프존카운티 선산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졌다. 페어웨이 잔디는 균일하게 깎았고, 홀에 따라서 폭은 평균 8~10m 좁아졌다. 단순히 좁게만 한 게 아니라 공이 떨어지는 위치, 홀의 전체적인 구성 등에 따라 폭의 너비를 다르게 하면서 더욱 전략적인 공략을 요구하게 했다. 러프의 길이는 10~12cm로 지난해보다 1.5~2배 길어졌다. 이 또한 무작정 길게 기른 것이 아니다. 생육 과정에서 잘라내는 작업을 반복해 잔디가 엉키거나 역으로 자라지 않도록 관리했다. 페어웨이와 확실하게 난이도의 차를 줘서 러프에 떨어지면 거리 조절 등을 어렵게 하면서도 선수의 부상 위험은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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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우가 1번홀 페어웨이에서 정확한 샷으로 공을 쳐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골프in 김상민 기자) |
코스 변화는 공략법까지 바꿔놓았다. 지난해 과감히 드라이버를 잡았던 홀에서 선수들은 올해 우드 등 짧은 클럽으로 신중하게 티샷했다. ‘멀리 치고 짧게 공략’하는 전술도 페어웨이를 놓치면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10번홀은 이번 대회의 분수령이 됐다. 평소 파5였던 이 홀이 대회 기간 파4로 변경되면서 선수들에게 강한 압박을 줬다. 페어웨이를 지키지 못하면 200야드가 넘는 거리가 남아 2온이 어려웠다.
선두를 달리던 박성국은 이 홀에서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나는 위기를 맞았다. 그는 두 번째 샷으로 공을 110야드 지점까지 끊어 안전하게 플레이한 뒤, 52도 웨지를 꺼내 정교한 어프로치로 공을 홀 30cm 옆에 붙였다. 이 ‘슈퍼 세이브’로 파를 지켜내며 선두를 놓치지 않았고, 이후 버디 2개를 추가해 4타 차 완승의 디딤돌이 됐다,
18번홀(파5)도 지난해와 달라졌다. 페어웨이 중간의 긴 러프 구간을 없애는 대신 폭을 좁혀 정확한 티샷을 한 선수만이 버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유도했다. 골프의 기본인 잘 친 샷에 대해선 확실한 보상, 미스샷에서는 그에 따른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리워드 앤드 리스크’를 적용한 것이다.
대회 사흘째엔 악천후가 변수로 작용했다. 전날 오후부터 내린 폭우로 벙커에 물이 고이고 그린이 젖어 그린 스피드가 3.4m에서 2.7m로 떨어졌다. 골프장 직원 전원이 코스로 나와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스펀지로 물기를 제거, 3.2m까지 스피드를 회복시켰다. ‘선수들이 제대로 된 코스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번 대회 그린 스피드는 1라운드 3.3m, 2라운드 3.4m, 3라운드 3.2m, 4라운드 3.5m로 최근 열린 대회 중 가장 빠른 수준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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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빈이 러프에서 공을 탈출시키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골프in 김상민 기자) |
토너먼트 코스로의 변신에 성적은 1년 전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파72로 치러진 지난해 대회에선 함정우가 나흘 합계 25언더파로 우승했다. 올해는 파71로 변경했고 박성국이 합계 16언더파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엔 무려 20명이 20언더파 이상을 쳤다. 올해 단 1명도 안 나왔다. 지난해엔 68명의 예선 통과자 전원이 언더파(최저타 3언더파)를 쳤고, 올해는 48명만이 언더파 성적으로 끝냈다.
선수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만족해했다. 1라운드 뒤 이형준은 “러프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깊은 러프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치는 것 같다”면서 “러프가 길지만, 선수들이 많이 공략하는 지점은 잔디가 많이 누워 있어서 조금 수월하게 경기했던 것 같다. 페어웨이 폭도 정말 많이 좁아져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고 말했다.
완벽한 토너먼트 코스 탄생 뒤엔 골프장 회원들의 배려와 지원도 있었다. ‘우리 손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 토너먼트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긴 러프와 늘어난 라운드 시간을 감수하며 운영을 지원했다. 박 대표는 “러프가 길게 자라면서 평소 5시간 정도 걸리던 라운드 시간이 최근엔 6시간으로 훌쩍 늘었지만, 회원들은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갤러리의 호평도 이어졌다. 촘촘히 관리된 페어웨이를 바라본 한 갤러리는 “선수들이 이런 코스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꼭 라운드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세하 대표는 “골프존 오픈하면 모든 클럽을 골고루 잘 치는 선수가 우승할 수 있는 코스로 만드는 게 목표였다”며 “다만 올여름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일부 프린지 구간이 손상되고 그린 경도가 계획보다 부드러웠다. 내년엔 올해 경험을 살려 더 완벽한 코스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코스에선 감동적인 우승드라마의 주인공이 나왔다. 박성국은 2018년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이후 6년 11개월 만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최근 일부 국내 프로골프대회가 엉망인 코스 관리 상태로 혹평을 받은 가운데 골프존 오픈의 성공은 큰 의미가 있다. 토너먼트에 걸맞은 코스 세팅과 관리가 선수의 경기력을 극대화하고, 대회 브랜드 가치와 팬들의 만족도를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골프존 오픈은 코스 준비와 운영에서 ‘토너먼트 코스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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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가 챔피언조를 따라 다니며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골프in 김상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