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와 “국장은 장소가 아니다”[생생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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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현 기자]“한국 개미들이 참여하면서 미국 시장이 한국화하고 있다.”

미국에서 117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굴리는 자산운용사 ‘아카디안’의 오웬 A. 라몬트 수석부사장이 주주들에 보낸 서한을 통해 했다는 말이다. 양자컴퓨터 등 급등 테마주가 우후죽순 생기고 레버리지 단일 주식 상장지수펀드(ETF)와 가상자산ETF에 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등 최근 미국 증시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같이 썼다. 한국 투자자들이 빨리 부자가 되기 위해 위험한 투자도 서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증시 약세가 한국 투자자 탓이 아닐진대 유명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비유하며 공멸을 우려했다.

사진=연합뉴스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이 재밌다. 급등 테마주를 중심으로 단기차익만을 노리는 투자 전략이 미국에서 유행하는 것을 놓고 한 누리꾼은 “국장은 장소가 아니다”라고 썼다. 라몬트 부사장이 쓴 이상한 현상의 원인이 한국 투자자라는 것을 전제로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온 대사를 살짝 바꿨다. 미국 증시로 장소를 옮겼을 뿐 한국 투자자들의 위험한 투자 행태는 여전하다는 의미다.

국장은 장소가 아니라 투자자라는 댓글을 보니 떠오르는 게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다. 급등하는 미국 증시가 아닌 국장에 투자하는 것은 바보라는 일종의 조롱이다. 한국 증권시장을 들여다보는 것이 업이라 서운하게 들렸으나 수익이 최선이라는 투자자를 탓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 나스닥 지수가 30% 넘게 오르는 동안 코스닥은 20% 이상 하락했으니 말이다.

“국장은 장소가 아니다”와 “국장 탈출은 지능순”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10위권으로 올라섰음에도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 모건스탠리캐피널인터내셔널(MSCI) 이머징마켓 지수에 편입돼 있는데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모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놀림거리였던 한국 증시는 올 들어 반등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신뢰할만한 투자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치주 중심의 투자는 여전히 뒷전이고 급등락 테마주에 거래량이 몰리는 흐름이 계속이다. 한국 증시 기피현상의 원인이 투자자에 있다는 호사가들의 댓글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편은 계속되고 있다. 이달 초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가 개장해 70년 한국거래소 독점 체제에서 벗어났으며 월말에는 공매도가 전면 재개된다. 정치권의 논쟁이 현재진행형이나 주주가치 제고가 목적인 상법개정안도 일단은 국회 문턱을 넘었다. 방향이 엇갈릴지언정 국장의 체질을 바꾸려는 백약처방이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증시를 구성하는 것은 상장사고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은 금융당국이나 투자 환경을 완성하는 것은 투자자다.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고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한국 주식시장이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변화도 필요하다. 단기차익에만 집중하는 투자 행태에서 벗어나, 기업의 본질적 가치와 장기적 성장성을 살피라는 의미다. 백약을 내놓아도 시장 참여자가 바뀌지 않는다면 체질 개선은 요원하다. 국장은 장소가 아니라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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